직장인 유튜버 막자니 꼰대기업, 두자니 정보 유출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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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3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 ‘돌디’는 지난해 6월, 8년간 몸담았던 삼성전자에서 퇴사했다. 이유는 회사와의 갈등. 과거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회사에서) 겸업 금지를 문제 삼아 퇴사시킬 수 있다는 위협적인 말을 들었다”는 고백까지 했던 그다.

회사문화 비꼰 은행원 인사 경고 #독자 23만 대기업 직원 퇴사까지 #기업 잇달아 내부 SNS 지침 바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에서 나온 그는 현재 전업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직원들이 지켜야 할 소셜미디어(SNS) 규칙 등을 담은 ‘SNS 가이드라인’을 수정했다. 삼성전자 측은 “기존 가이드라인이 텍스트 중심의 SNS에 맞춰져 있어 여기에 영상을 추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인 10명 중 6명, 유튜버 꿈꾼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성인 10명 중 6명, 유튜버 꿈꾼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유튜브’가 대세로 부상하면서, 직장인 유튜버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기업들과 직원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이를 통해 기업 관련 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어서다. 또 일부 직장인들이 회사 일은 제쳐놓고, 유튜브에 매달리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도 부담이다.

직장인 유튜버로 인한 기업 이미지 훼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실제 S은행은 지난해 말 20대 여성 행원 A씨에게 인사 경고 조치를 내렸다. A씨가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직장 내 문화를 비꼰 게 발단이 됐다.

삼성물산 출신 유튜버 ‘부동산 읽어주는 남자(구독자 36만 명)’는 2018년 말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삼성을 나온 이유’를 설명하면서 “악착같이 버티고, 제칠 사람은 제치고, 속일 사람 속여야 했다”며 “회사가 잘되든 말든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영상의 조회 수는 9만 회(올 1월 기준)가 넘는다.

20대 기업에서 일하는 한 홍보 담당 부장도 “유튜버 활동이 회사 일에 지장을 주는 건 둘째치고, 직원이 유튜브에서 한 말이나 정치적 성향이 회사 전체의 입장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며 “유튜브 때문에 기업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규칙’이나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정비하는 기업이 최근 부쩍 늘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 A사는 최근 ‘디지털 콘텐트 활동 가이드’를 만들어 직원들에 배포했다. 가이드는 구체적이다. “사무공간·비품 등 회사 자산을 노출하거나 이를 콘텐트 촬영 및 제작에 활용하지 못한다”고 못 박은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10대 그룹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업은 적절한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못하고 속만 끓인다. 5대 그룹의 한 임원은 “젊은 직원들의 유튜버 활동을 금지하면 ‘꼰대 기업’이란 비판을 받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권태혁 공인노무사는 “직장내 취업 규칙이나 가이드라인 등에서 직원의 유튜버 활동을 금지할 수 있지만 (기업이) 직업 선택 및 사생활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규정은 만들 수 없다”고 했다.

강기헌·이소아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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