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기소 지시, 하루에 세 번 뭉갠 지검장…함정이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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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

이성윤

 23일 저녁 법무부가 최강욱(52)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전결로 기소한 송경호(51·사법연수원 29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대한 감찰 의사를 밝혔다. 이날 새벽 송 차장이 직속상관인 이성윤(59·사진·사법연수원 23기) 서울지검장의 승인 없이 최 비서관을 기소했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부는 ‘적법절차를 위반한 업무방해 사건 날치기 기소’라는 거친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고위 공무원에 대한 사건은 반드시 지검장의 결재·승인을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검찰청법·위임전결규정 등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재가 주문에 이성윤 버텨 #결국 송경호 3차장 전결로 기소 #법무부 “날치기 기소…법위반 소지” #지검장 건너뛴 게 감찰 구실 제공

그러나 송 차장의 기소 결정은 단독으로 내려진 게 아니라 윤석열(61·사법연수원 23기) 검찰총장의 직접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그 때문에 법무부가 최종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윤 총장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최 비서관도 자신의 변호인인 하주희 변호사를 통해 “검찰권을 남용한 ‘기소 쿠데타’”라며 강력 반발했다. 그는 “그동안 윤 총장을 중심으로 특정 세력이 보여온 행태는 적법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내부 지휘계통도 형해화시킨 사적 농단의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이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두 차례 인사를 통해 손발이 잘려나간 윤 총장의 입장에선 이번 사건으로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윤 총장이 이번 사건으로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윤 총장이 송 차장에게 전결 처리를 지시한 이유는 이 지검장이 최 비서관에 대한 기소 승인을 줄곧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즉 ‘이 지검장의 승인 회피→윤 총장의 기소 지시→송 차장 전결로 기소→법무부 감찰 의사 표명’의 과정을 거치면서 윤 총장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그러나 지난 열흘간 최 비서관에 대한 기소 여부를 놓고 벌어진 검찰 내부의 줄다리기 상황을 보면 윤 총장 입장에선 부당하게 느껴질 만한 지점이 많다. 이 지검장이 취임한 지난 14일 반부패수사2부 고형곤 부장검사가 이 지검장을 찾아가 최 비서관을 기소할 증거와 자료가 충분하니 결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임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과 윤 총장과는 이미 조율된 사안”이라고도 밝혔다. 하지만 이 지검장은 “새로 부임해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미뤘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22일 하루에만도 윤 총장은 세 번이나 이 지검장에게 최 비서관 기소 건을 재가하라고 주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윤 총장이 직접 송 차장에게 전결 처리를 지시했다. 원래 기소는 차장이 결재하지만 중요 범죄에 대해서는 지검장 승인을 받는다. 다만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 반대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직권으로 기소를 지시할 수 있다.

윤석만 사회에디터, 김민상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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