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첩? 진정? 논란만 남겼다···靑·인권위 오고간 '조국 문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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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6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뉴시스]

지난해 12월 26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뉴시스]

인권위 문서 수·발신 자료 보니

최근 청와대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인권 침해 논란에 대한 조사를 해달라”는 국민청원 관련 문서를 보내면서 인권위 독립성 훼손 논란이 불거졌다. 문서 접수 형식이 ‘진정’인지 ‘이첩’인지 등도 불분명해 온갖 억측을 낳았다. 접수 형식에 따라 인권위가 대응을 달리할 수 있어서다.

이런 혼란 끝에 인권위가 “문서를 반송(返送)했다”고 밝혔지만 청와대는 “문서가 반송되지 않았고 남아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진실 공방 양상마저 보였다. 청와대와 인권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인권위가 16일 공개한 ‘청와대와의 문서 수·발신 결과’ 문서를 보면 진실을 엿볼 수 있다. 우선 대통령 비서실이 7일 인권위에 ‘국민청원 관련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검찰이 조 전 장관 가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인권침해를 조사해달라'는 국민청원 답변 요건이 달성(22만6434명 동의)됐고 이에 대한 인권위의 답변 협조를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인권위는 8일 대통령 비서실에 ‘국민청원 관련 협조에 대한 회신’ 공문을 보냈다. “진정 제기 요건을 갖추고 행정상 이첩이 이뤄져야 조사 개시 요건을 갖추게 되고, 이 경우에만 진정으로 접수해 조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이첩이란 '공문을 다른 기관이 처리하도록 넘기는 것'이다. 진정은 '문제 해결 목적의 조사 등을 요구하는 행위'인데, 인권위는 접수 받은 문서의 요건을 이유로 들어 '조사가 가능하지 않다'는 뜻을 이같이 표현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조 전 장관 논란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끼어들지 않으려는 인권위의 의지가 담긴 회신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연합뉴스]

그러자 대통령 비서실은 9일 인권위에 ‘국민청원 이첩 관련’ 공문을 발송했다. 국민 청원을 이첩한다는 것이었다. 인권위는 이 역시 진정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다고 밝혔다.

대통령 비서실은 13일 문서를 하나 더 보냈다. ‘공문 관련 협조 요청’이 제목이었다. 9일에 보낸 "‘국민청원 이첩 관련’ 공문이 착오로 보내진 것이니 폐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인권위는 이날 대통령 비서실에 ‘[반송] 공문관련 협조요청에 따른 회신’ 문서를 발송했다. "이첩관련 공문이 착오로 송부됐기에 9일자 문서를 반송처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종합하면 대통령 비서실이 공문 3개를 인권위에 보냈고, 인권위는 공문 2개를 대통령 비서실에 전송했다. 인권위가 보낸 공문 중 1개는 ‘반송’ 공문이다.

청와대·인권위, 정확히 해명 안 해 혼란 증폭

몇 건의 문서가 청와대와 인권위 간에 오고갔는지, 해당 문서의 성격이 '이첩'인지 '진정'인지와 관계 없이 조 전 장관 관련 문서 혼란은 청와대의 폐기 요청으로 없는 일이 됐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조 전 장관 관련 문건을 인권위에 보냈던 사실 자체를 두고 인권위에 압력을 가했다는 논란은 남아 있다. 압력 의혹에 대해 청와대는 부인한다. 인권위도 “압력이다 아니다를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며 "이전에도 청와대 비서실에서 이송된 문건은 인권위 설립 후 700건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청와대와 인권위는 문서 원본 공개는 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중앙포토]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중앙포토]

국민청원 게시자, 직접 인권위 진정

한편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를 조사해달라"고 국민 청원 글을 쓴 당사자가 17일 직접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은우근 광주대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인권위 조사를 촉구하는 글을 올린 당사자”라고 밝혔다.

그는 “검찰의 조 전 장관 가족 수사는 먼지떨이 식인 데다 저열하고 비열한 공격”이라며 “조 전 장관이 검찰 개혁을 주장했기 때문에 유례없는 표적이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 교수는 광주전남교수연구자연합 공동의장으로서 '검찰 개혁' 주장 활동을 해왔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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