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뉴스] 성탄 전야의 기적···"대림역서 절 구해준 은인들 찾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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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직장인 곽모(24)씨가 지난해 12월 24일 쓰러졌다 구조된 대림역 승강장. 정은혜 기자.

직장인 곽모(24)씨가 지난해 12월 24일 쓰러졌다 구조된 대림역 승강장. 정은혜 기자.

“진심을 다해 고마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감사는 직접 표현해야 그분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승강장 벽에 부딪힌 20대 여성 #근처 아주머니 부축으로 응급실행 #CCTV 보고 남성 둘 도움 알게 돼 #“그날은 기적, 감사 전하고 싶어”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10시쯤 서울 2호선 대림역 승강장에서 쓰러진 곽모(24)씨의 말이다. 곽씨는 자신이 쓰러졌을 때 구조를 도와준 남성 두명을 찾고 있다. 이들은 20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곽씨는 그날 밤 지하철 전동차 내에서 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쉬기 위해 대림역에 내렸는데, 의자로 걸어가다가 쓰러져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충격으로 눈썹 아래가 찢어져 피를 흘렸다.

대림역 삽화

대림역 삽화

정신을 차렸을 때 곽씨는 한 아주머니가 자신을 도왔다는 걸 알게 됐다. 우선 아주머니의 전화번호를 받아뒀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사고 당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대림역으로 향했다. 역내 폐쇄회로(CC)TV를 보니 곽씨를 도운 또 다른 은인들이 있었다.

화면엔 한 남성이 쓰러진 곽씨를 돌보며 전화로 신고를 하고, 뛰어다니며 역무원을 부르는 모습이 담겼다. 잠시 후엔 그의 친구로 보이는 남성도 곽씨를 도우려 동분서주했다. 이들은 아주머니와 역무원이 곽씨를 부축해 데려가자 카메라 밖으로 떠났다.

직장인 곽모(24)씨가 지난해 12월 24일 쓰러졌다 구조된 대림역 승강장. 정은혜 기자.

직장인 곽모(24)씨가 지난해 12월 24일 쓰러졌다 구조된 대림역 승강장. 정은혜 기자.

곽씨는 기자에게 “제가 쓰러졌을 때 그냥 쳐다보며 지나간 분도 있었다"며 "그런데 그분은 저를 보자마자 도움을 주셔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는 “그 추운 날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저는 바닥에 한동안 방치돼 정말 큰일 났을 수도 있겠다 싶어 아찔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사고로 눈 천장 뼈에 금이 가고 뼈 일부가 부서졌다. 눈썹 아래쪽이 찢어진 상처는 5cm가량이다.

곽씨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예상치 못하게 다쳐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쓰러진 나를 망설임 없이 도와준 이들이 있어 기적처럼 느껴졌다"고도 했다. 이런 말을 하던 곽씨는 "감사함에 많이 울었다"며 훌쩍였다.

곽씨는 CCTV를 확인하러 2~3차례 대림역 역무실을 찾아갔다. 역 직원들에 따르면 곽씨는 "역에 은인들을 찾는다는 전단이라도 붙여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곽씨는 최근엔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도 사연을 올렸다. 사연은 온라인 커뮤니티로 퍼져 댓글이 수백개씩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도움을 준 남성들의 연락은 6일까지 오지 않았다. 곽씨에게 "연락이 오지 않더라도 감사한 마음을 다른 사람에서 베풀며 살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해봤다. 곽씨는 "감사한 마음을 그 당사자에게도 꼭 표현하면서 살자는 다짐을 실천하고 싶다"며 "도움 주신 분들의 뜻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인사를 드리고 싶을 뿐"고 답했다.

곽씨는 "그분들이 저의 답례를 부담스러워 한다면 명절 과일이나 감사 메시지라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곽씨는 은인을 찾기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dec20002)도 공개했다.

기자의 이메일로 연락해도 곽씨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그날의 CCTV 영상에 대해 곽씨와 대림역 측은 "도움을 준 당사자들이 동의하는지 아직 알 수 없다"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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