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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애플 도망쳐도···퀄컴에 '1兆어퍼컷' 날린 공정위 네 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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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배현정

배현정

서울고법은 지난달 4일 ‘공정위 대 퀄컴’ 행정소송에서 “퀄컴이 칩세트 공급과 특허권을 연계해 확보한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정상적인 경쟁을 방해하고 특허권을 독식했다”는 공정위 주장을 받아들였다. 공정위가 퀄컴에 매긴 과징금 ‘1조311억원’을 전부 인정했다. 역대 최대 규모 과징금이었다.

‘특허 끼워팔기’ 과징금 승소 재구성 #2015년 전담팀 꾸려 3200쪽 보고서 #퀄컴, 공정위 출신 많은 로펌 계약 #변호사 22명 선임료 1000억 소문 #삼성·애플 갑자기 소송 취하하기도

치열한 법정 다툼 끝에 들려온 낭보에 5년 가까이 사건에 매달려온 배현정 (사진)공정위 서기관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견된 공정위의 승소기를 배 서기관과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했다.

◆다윗 공정위 vs 골리앗 퀄컴=처음 퀄컴 전담팀을 꾸린 건 2015년 1월. 팀원은 4명이 전부였다. 송상민 국장이 팀장을 맡고 유영욱 과장, 배 서기관, 박정현 사무관이 참여했다. 변호사인 배 서기관이 법률문제, 이공계 출신 박 사무관이 기술 문제를 주로 맡았다. 문제는 선례가 없다는 것. 글로벌 공정 당국이 퀄컴을 제재한 첫 사례여서다. 검토해야 할 계약서·특허가 모두 전문용어로 가득한, 그것도 영문 자료였다. 본사가 미국에 있는 것도 골치 아팠다.

“국내 업체 같은 경우 1~2주면 회신하는 자료도 기본 한두 달씩 걸리더라고요. 본사에서 느릿느릿 돌아오는 의견서에 맞춰 밤샘, 주말 근무한 날이 많았습니다.”

퀄컴은 주요 고객이 삼성·애플·인텔·엔비디아·화웨이·에릭슨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대기업이다. 주요 스마트폰에는 퀄컴이 만든 모뎀 칩셋과 특허가 들어간다.

2016년 7월 열린 퀄컴의 시장 지배적지위 남용행위 등에 대한 공정위 전원회의 모습. [연합뉴스]

2016년 7월 열린 퀄컴의 시장 지배적지위 남용행위 등에 대한 공정위 전원회의 모습. [연합뉴스]

퀄컴은 LTE·5세대(5G) 모뎀 칩셋 분야 점유율 세계 1위다. 통신 분야 표준필수특허(약 2만5000개)도 가장 많다. 일반 특허가 아니라 ‘표준’인 데다, 안 쓸 수 없는 ‘필수’ 특허란 점이 중요하다. 2015년 기준 특허·칩셋 매출이 30조원에 이른다. 퀄컴이 ‘특허 공룡’으로 불리는 이유다.

퀄컴은 IT 업체에 모뎀을 판매하면서 모뎀뿐 아니라 특허 공유 협상을 병행했다. 최대한 많은 특허 이용료(로열티)를 받아내려는 전략이었다. 업계는 퀄컴이 로열티를 높게 부르거나 모뎀에 특허를 끼워팔아도 속수무책이었다.

공정위 조사에도 덩치에 어울리는 물량 공세를 펼쳤다. 공정위 ‘전관’이 즐비한 세종·율촌·화우 등 국내 대형 로펌을 선임해 맞섰다. 특허·IT·공정거래법·경제학 전문가도 섭외해 논리를 뒷받침했다.

◆1차전, 전원회의=퀄컴 전담팀이 퀄컴에 보낸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 분량은 3200쪽에 달했다. 일반적인 IT 대기업 심사보고서 분량의 5~8배 수준이었다. 심의는 팽팽했다.

“첫 번째 심의 때 퀄컴 측 변호사가 공정위 보고서를 두고 ‘잘 쓴 소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노력을 소설로 깎아내리니까 허탈했죠. ‘잘 쓴’이란 수식어를 두고 애써 ‘그래도 우리가 잘 만들었다는 건 인정했다’며 동료들과 농담을 나눈 게 기억에 남습니다.”

전원회의가 열릴 때면 삼성·LG전자와 애플 관계자까지 이례적으로 몰려들어 심판정이 북적였다. 공정위는 이례적으로 전원회의를 7번이나 열고서야 과징금 부과를 확정했다. 2016년 12월 마무리한 1차전은 공정위의 승리였다.

◆2차전, 법정=퀄컴은 바로 행정소송에 들어갔다. 대형 로펌 변호사 22명을 선임했다. 선임료만 수백억원, 심지어 1000억원에 달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변호사 선임료로만 따지면, 승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이었다.

“공정위 시정 명령은 퀄컴의 사업구조를 전부 바꾸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매우 과격하고, 전면적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입니다(퀄컴).”

“퀄컴의 독점 구조를 그대로 두면 사물인터넷(IoT), 5G 이동통신도 결국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것입니다(공정위).”

양측이 법정에서 주고받은 답변 자료만 7만4810쪽에 달했다. 공정위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보조 참가한 삼성·애플이 하루아침에 소를 취하하는 일도 벌어졌다. 퀄컴의 지배력과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퀄컴의 청구를 기각하고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퀄컴이 배타적인 수혜자였던 폐쇄적 생태계를, 산업 참여자가 누구든 자신이 이룬 혁신의 인센티브를 누리는 개방적인 생태계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이 기사는 중앙일보 온라인판 ‘김기환의 나공’에서 쓰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그대로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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