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떨어진 불 AID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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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직까지는 예방약이나 치료약이 없어 「현대판 흑사병」이라 별칭 되는 AIDS (후천성 면역결핍증)가 바로 우리 생활주변에 급격히 확산되고 있어 경계와 대책이 요망된다. 결혼을 앞둔 20대의 청년과 출산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임신부의 경우가 이 무서운 질병으로 해서 불행한 처지에 빠지고, 이제 10대 미성년자의 감염사실까지 밝혀진 게 불과 사흘사이의 일들이다.
우리 나라에 첫 환자가 발생한 85년 이후 4년간의 AIDS 감염자수보다 지난 1년간의 발생 숫자가 더 많다는 점을 보아도 이 악역이 얼마나 급속도로 우리 생활주변에 확산되고 있는가를 입증해 주고 있다. 더군다나 병균의 잠복기간이 길게는 무려 5년에 이르고 발병 때까지는 아무런 자각증상이 없기 때문에 당국이 파악하는 숫자보다 몇 배나 더 많은 감염자들이 있으리란 전문가들의 추정은 확신에 가깝다.
전세계 AIDS환자의 70%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해 성도덕이 비교적 문란한 서구와 동남아에서의 확산추세를 쫓아가는 우리의 AIDS 감염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요인은 많다. 이 땅을 드나드는 국내·외 관광객이 1년이면 2백만 명을 헤아리고 해외취업자·주한미군 등 감염요인은 도처에 잠재해 있다. 게다가 성 풍조의 개방화와 늘어만 가는 향락업소,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퇴폐행태 등은 이 죽음의 병 확산을 더욱 부채질하고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관계당국의 이에 대응하는 태도는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우선 AIDS 감염자를 전담 관리하는 전문시설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5만여 명에 이르는 AIDS의 무검진 대상자에 대한 검진마저도 3분의1 정도에 그칠 뿐 나머지는 단순 성병검사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 들어와 일정기간 이상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에 대한 검진도 실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방역예산 자체마저 대폭 줄여버렸다. 한마디로 속수무책인 셈이다.
AIDS는 이제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절박한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증대된 AIDS 감염 위험성에 관한 대 국민 계몽과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감염자와의 성적 접촉이라는 극히 은밀한 사생활에 의해 감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국민 각자가 감염의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홍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따라서 정확한 감염경로를 모든 국민에게 숙지시킴으로써 확산을 예방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와 병행해 특수 업태부나 유흥업소 종사자들 전반에 대한 검진과 감염자에 대한 관리 또한 철저히 해서 감염 경로를 차단하는 노력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작년 1월 런던에서 열린 세계보건장관회의는 AIDS 퇴치를 위해 국가간 협력을 다짐하는 「런던선언」을 채택한바 있다. 이 정신을 살려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한 자국의 보장이나 우리의 검진을 제도화하는 국제적 협약도 검토해볼 만 하다.
성적관계란 궁극적으로 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개인 각자가 감염위험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예방법임에 틀림없다. 건전한 성생활을 영위하는 것만이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가장 정확하고 유일한 방법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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