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린카의 오페라 『황제에게 바친 목숨』72년만에 소서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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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가 16년만에 합법적으로 출판되고 고르바초프를 희화한 미술작품이 등장하는 등 소련의 문학·미술계에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음악계에도 커다란 변혁이 일고 있다.
1917년 러시아혁명 후 제목이 화근이 돼 공연이 금지됐던 미하일·글린카(1804∼1857)의 오페라 『황제에게 바친 목숙』이 해금돼 72년만에 다시 공연할 수 있게 됐다.
12월 25일 러시아 겨울음악제의 개막 오페라로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공연되는 이 오페라는 러시아 최초의 오페라로서 소련음악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글린카가 러시아 국민음악파의 시조로 불리는 것도 바로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아 뒷날 무소르크스키·차이코프스키 등이 국민오페라를 작곡했기 때문이다.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서곡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글린카가 『황제에게 바친 목숨』을 작곡한 것은 1834년부터 1836년까지. 로젠남작의 대본에 곡을 붙인 것으로 모두 4막으로 구성돼 있고 이 가운데 나오는 아리아 『솟아오르는 태양』은 단독가곡으로도 널리 애창되고 있다.
작곡 당시 원래의 제목은 『이반 수사닌』이었으나 1836년 페테르스부르크의 황실대극장(현재는 키로프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황실측의 요구에 따라 『황제에게 바친 목숨』으로 개명됐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 이반 수사닌은 17세기때 실재했던 인물로 폴란드가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조국을 구한 농민이다.
『황제에게 바친 목숨』의 수난은 공연금지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스탈린정권 하인 1939년에는 고로데츠키의 왜곡된 대본에 의해 『이반 수사닌』이란 이름의 개정판이 등장한 것이다.
이 개정판에 대해 훗날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회상록에서 『러시아농민이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친데 대해 스탈린이 흥미를 보인 것은 자신을 위해 인민이 희생해 주길 바랐기 때문』이라며 꼬집고 있다.
스탈린 시대에는 이밖에도 보로딘의 『이고르공』림스키코르사코프의 『프스코프의 처녀』등 수많은 오페라가 개작됐는데 특히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부인』이 심한 비판을 받다가 결국 『카네리나 이즈마이로바』로 개정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황제에게 바친 목숨』이 글린카의 원전대로 다시 상연되는 것을 계기로 이처럼 개작된 많은 오페라 작품들이 원제대로 복원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12월 모스크바에서의 공연에 앞서 이 작품은 볼쇼이극장 수석지휘자 알렉산드르 라자레프의 지휘로 10월 이탈리아에서 먼저 공연된다. <유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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