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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 안한 죄? 남편 죽자 집 내놓으라는 시댁 동생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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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88)

지난달에 저희 이모부가 돌아가셨어요. 이모와 이모부는 각자 초혼에 실패하고 자식 없이 혼자 씩씩하게 살다가 중년에 만난 사이입니다. 다시 자식을 갖기는 어려웠고 죽을 때까지 의지하며 친구처럼 살자고 약속하고 10년 전에 결혼식은 올렸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비록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진정한 부부였고, 이모보다 더 저를 예뻐해 주는 이모부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모부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살기로 했지만, 혹시 나중에 이모가 집 없이 떠돌아 다닐까 봐 같이 살 집을 마련하면서 이모 이름으로 등기했다고 했습니다. 이모는 수예점을 하면서 많은 돈은 아니지만 살림에 보탤 돈을 벌었고 ,이모부도 전자제품을 수리하면서 계속 경제활동을 해서 두 사람이 사는데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집 외에 다른 재산은 거의 이모부 이름으로 되어 있었고요. 

중년에 만난 이모와 이모부는 죽을 때까지 의지하며 친구처럼 살자고 약속하고,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장례절차가 마무리되자 이모부 형제들이 이모에게 대뜸 합의하자고 했답니다. [사진 pixabay]

중년에 만난 이모와 이모부는 죽을 때까지 의지하며 친구처럼 살자고 약속하고,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장례절차가 마무리되자 이모부 형제들이 이모에게 대뜸 합의하자고 했답니다. [사진 pixabay]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장례절차가 마무리되자 이모부 형제들이 이모에게 대뜸 합의하자고 했답니다. 무슨 말인지 의미를 모르는 이모에게 그들은 이모부랑 호적정리도 하지 않고 살았으니 상속인이 아니고 자식도 없으니 본인들이 상속인이라고 주장하며, 가장 큰 재산인 집을 이모에게 주고 갔으니 유류분 청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답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을 지금에 와서 거론하니 이모로서는 기가 막혀서 딸 같은 조카인 제게 이 일을 털어놓았습니다. 이모부 생전에는 정말 보기 좋다면서, 형을 구제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니 이제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형수가 아니라고 나오는 그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엄격하게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사례자 이모는 상속인이 아닙니다. 이모부 부모님이 이미 사망했다면 법정 상속인은 이모부의 형제자매가 됩니다. 우리 민법은 유류분제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류분제도란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상속인 또는 근친자에게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해 일정한 형태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법률상 상속인에게 일정 비율의 상속재산이 보장되지만, 그 부분만큼 피상속인의 재산처분 자유가 제한되죠. 따라서 이모부 형제들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이모부 형제들이 이모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을 구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선뜻 수긍하기가 어렵죠.

그래서인지 요즘 유류분제도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사례자 이모부의 경우 그 형제들이 이모부의 재산 형성이나 부양에 특별한 기여를 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이모부가 남겨놓은 집에서 이모가 계속 거주하는 것에 대부분 사람이 동의할 것입니다. 아무리 이모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모에게 생전에 남긴 집의 일부에 대해 이모부 형제들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납득이 잘 되지는 않죠. 이모부의 부모나 자녀가 그런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별개고요.

2018년 개정된 일본 민법은 제1042조부터 제1049조까지 유류분 내용을 정하고 있습니다. 제1042조는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자와 그 비율에 관한 규정인데 ‘형제자매 이외의 상속인’을 유류분 권리자로 규정해 형제자매를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습니다. 유류분 제도를 폐기할 수는 없지만 이와 같은 다른 나라의 법 제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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