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호르무즈 파병, 두루 살핀 뒤 신중히 결정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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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미국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분위기다. 파병에 반대하는 진보 세력이 주 지지층인 정부가 이런 결정을 고려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한·미 간의 긴밀한 공조가 절대적이다. 방위비 분담금을 5배인 50억 달러로 올려 달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도 이 같은 류의 조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라크 파병 때의 실수, 되풀이 말아야 #장병 안전, 이란과 관계도 유념할 필요

그럼에도 미국·이란 간 분쟁 지역인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해군을 보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파병 결정을 순조롭게 끌어내는 것부터 큰일이다. 지난 2003년 이라크 파병 때처럼 이번에도 격렬한 반발이 생길 공산이 크다. 이라크 파병 결정 당시 곳곳에서 격렬한 반대 시위가 일어나 적잖은 이들이 다치고 국론은 분열됐다. 이런 불상사를 막으려면 결정 전에 정부의 충분한 설득 작업이 이뤄져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국회 내 논란을 피하기 위해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을 아덴만에서 호르무즈 해협으로 늘리는 우회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꼼수’ 논란에 휩싸일 게 뻔하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당당히 국회 동의를 얻어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울러 이번 파병이 당초 의도가 이뤄지도록 주도면밀하게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다. 파병 카드를 제때, 최선의 방법으로 써야 한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파병만 해주고 분담금은 한 푼도 못 깎을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이런 일이 없도록 충분한 교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우려는 우리 군의 안전 문제다. 이라크 파병 때는 담당 지역이 비교적 평화로워 자이툰 부대가 전투에 투입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라크 때는 제대로 훈련 안 된 반군이 적이었지만 이번엔 중동의 최강국 이란의 정규군을 상대해야 한다. 그간 소말리아 인근에서 화물선 등을 보호해 왔던 청해부대가 아덴만으로 파견되면 기존 임무는 어떻게 할지도 과제다. 두 지역을 한꺼번에 담당하기에는 나흘 걸리는 아덴만과 호르무즈 해협 사이가 너무 멀다.

마지막으로 신경 써야 할 대목은 이란과의 관계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이란과 적대적 관계가 아니었다. 나쁘기는커녕 1970년대 이란은 우리 건설사가 진출해 외화를 벌어들였던 나라다. 더 중요한 건 지금의 경제 제재가 풀리면 ‘제2의 중동 특수’를 기대할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이라는 점이다. 그런 만큼 호르무즈 파병으로 이란과의 관계가 급속히 나빠지는 일은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처럼 호르무즈 파병 방침인 일본의 아베 총리가 20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자위대 파견 문제를 결정하기로 한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