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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책 아쉬웠던 총리 인선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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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한 바퀴 다 돌았다. 이낙연 총리의 후임자 얘기다. 한 달 넘게 숱한 인사들이 거명됐다. 급기야 국회의 상징으로 꼽히는 국회의장 출신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명됐다. 지금 돌아보면 총리 참 어렵게 골랐다 싶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당초 경제 총리를 구상했으면 그대로 밀고나갔어야 했다. 그런데 현 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인 양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는 민주노총이 당초 거론되던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과거 정책판단을 문제 삼자 일이 뒤틀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5000만 국민의 2%에 불과한 노동단체에 휘둘려 국정을 표류시킬 것인지 묻고 싶다.

탕평 인사로 정책 균형 되찾고 #벼랑 끝 경제 구해야 하는 만큼 #지금은 경제 총리 지명 잘한 일

이런 소동 끝에 다행인 것은 결국 경제 총리가 지명됐다는 점이다. 지금은 경제를 잘 아는 총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다섯 가지만 꼽아보자. 첫째는 지금 한국 경제가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는 현실이다. 경제성장률이 2년 내리 2%도 힘겨워진 것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 경제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끝없이 자기최면을 걸고 있다. 이러니 정부에 경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경제 총리가 필요하다. 둘째는 실제로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정세균은 성공한 기업인 출신(쌍용그룹)에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거쳤으니 적임자다.

무엇보다 중요한 셋째 이유로는 현 정부에는 ‘균형 잡힌 경제관’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민주노총과 일부 시민단체가 노무현 정부의 경제부총리 시절 김진표가 법인세를 인하하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나섰던 것을 문제 삼았지만 이는 모두 합리적 결정이었다. 이런 잣대로 발목을 잡는다면 정세균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는 기업인 출신답게 산자부 장관 시절 균형잡힌 정책 판단과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넷째는 인사의 정상화다. 현 정부는 그동안 탕평책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기 어려운 편향 인사로 일관했다. ‘인사가 만사’이거늘 언제나 ‘인사가 문제’였다. 전문가도 없고 실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3무(無) 정부라는 비판이 어색하지 않았다. 선거 캠프에 있었거나 좌편향 이념 코드가 맞거나 더불어민주당을 거쳐야 쓴다고 해서 ‘캠코더 정권’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정세균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지만 좌편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섯째, 이제는 집권 반환점을 지난 만큼 정책실험을 멈추고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무모했던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은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잃고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나서야 제동이 걸렸다. 한·일 외교 갈등이 한국 경제의 심장인 반도체 소재의 수출 규제로 이어져도 외교부 장관이 “보복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허공에 외치고, 부실한 인사 검증을 남발했던 민정수석은 “죽창을 들라”고 선동했다. 이래서는 국민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국민 사이에는 차라리 노무현 정부가 그립다는 얘기도 나온다. 같은 진보 좌파라도 정부 운용 능력이 너무 다르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그 결정적 차이는 알고 보면 대단한 게 아니다. 딱 한 가지를 꼽으라면 탕평책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처음엔 신념이 앞섰지만, 현실 앞에서 유연하게 실용을 선택했다. 그 원동력이 탕평책이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꼽히는 강희제(康熙帝)는 ‘나라 다스리는 것은 신하 다스리는 것과 같다’는 제왕학을 남겼다. 그가 역대 황제 중 최장수 재임 기간 61년(1661∼1722)을 기록한 비결은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와 탕평책이었다. 현 정부에 대입하면 청와대 참모와 장·차관에 유능한 인재를 두루 등용하라는 의미다. 경제 총리는 그 출발점이다. 당사자인 정세균은 얼굴마담이 아니라 역사에 이름을 남길 명총리가 되길 바란다. 그것이 국회의장까지 지낸 분이 행정부 2인자가 됐다는 세간의 지적이 잘못됐다는 걸 증명하는 길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