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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시대에 관용을 주옵시고” 남북평화 복음 전파한 U2

중앙일보

입력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U2의 첫 내한공연. [연합뉴스]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U2의 첫 내한공연. [연합뉴스]

록밴드 U2의 첫 내한공연은 콘서트라기보다는 ‘부흥회’에 가까웠다. 1976년 아일랜드에서 결성 후 43년 만에 처음 한국을 찾은 이들이 던진 메시지는 그 어떤 경전에 쓰인 말씀보다 지금의 현실에 걸맞은내용이었기 때문이다.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찾은 2만 8000여 관객은 그 어느 때보다 경건한 자세로 무대 위에서 이들이 전파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였다. 리더 보노가 노래 중간 새로운 메시지를 전할 때마다 객석은 감격으로 들썩였다.

“테러의 시대에 관용을 주옵시고…”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다양한 영상을 활용했다. [사진 라이브네이션코리아]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다양한 영상을 활용했다. [사진 라이브네이션코리아]

공연은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Sunday Bloody Sunday)’로 포문을 열었다. 예정 시간인 7시보다 20여분 늦게 시작됐지만, 불만을 품는 사람은 없었다. 1973년 아일랜드의 비무장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한 ‘피의 일요일’ 사건 희생자를 위로하는 노래는 평화의 서막에 가장 적합한 곡이었으므로.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추모하는 ‘프라이드(Pride)’를 부르며 보노는 “39년 전 오늘 우리가 잃은 ‘피스 메이커’ 존 레넌을 기억하자”고 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관객들은 휴대폰 라이트를 켜 공연장을 밝혔다. 존 레넌 역시 영국 출신이지만 북아일랜드를 탄압하는 영국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터였다.

하여 “테러의 시대에 우리에게 관용을 주옵시고, 두려움의 시대에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시옵소서”라는 구절로 시작한 2부는 더욱 힘을 받았다. ‘웨어 더 스트리트 해브 노 네임(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은 1987년 발표된 정규 5집 ‘조슈아 트리(The Joshua Tree)’의 첫 번째 곡이다. 이번 투어는 앨범 발매 30주년을 기념해 진행된 ‘조슈아 트리 투어 2017’의 연장 공연으로 수록곡 11곡을 모두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위드 오어 위드아웃 유(With or Without You)’나 ‘아이 스틸 해븐트 파운드 왓 아임 루킹 포(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가 나올 땐 떼창이 이어졌다. 가로 61m, 세로 14m의 초대형 8K LED 스크린 위로 펼쳐진 웅장한 대자연의 풍경에 관객들은 넋을 잃고 빨려 들어갔다.

“모두 평등할 때까지 누구도 평등치 않아”

‘울트라바이올렛’을 부르는 동안 스크린에 등장한 한국 여성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 가수 설리 등이 눈에 띈다. 민경원 기자

‘울트라바이올렛’을 부르는 동안 스크린에 등장한 한국 여성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 가수 설리 등이 눈에 띈다. 민경원 기자

하지만 한국 관객들의 눈물을 훔치게 한 것은 ‘울트라바이올렛(Ultraviolet)’이었다. 스크린 위에 떠 있던 ‘히스토리(History)’라는 단어가 ‘허스토리(Herstory)’로 바뀌면서 역사를 새로 써 내려 간 여성들의 얼굴이 차례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화가 나혜석,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여성 비행사 박경원 등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들은 물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가수 설리나 국내 ‘미투 운동’의 물꼬를 튼 서지현 검사 등이 눈에 띄었다. 화면에 얼굴을 비친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현장에서 직접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보노는 “전 세계 여성들이 하나가 돼 히스토리를 허스토리로 다시 쓰는 날이 올 때, 그때가 바로 아름다운 날”이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사랑은 어떤 것보다 더 큰 거야” 등 한글 메시지가 스크린에 등장하자 공연장 분위기는 한층 숙연해졌다. 보노가 한 글자씩 또박또박 한국어로 전한 “감사합니다” “한국 대박이에요” 같은 인사말보다 훨씬 큰 울림이 전해진 탓이다. 공연 전 스크린을 채운 이시영의 ‘지리산’, 김혜순의 ‘감기’ 등 한국 시들이 오버랩되면서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각각의 공연을 준비하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남북한의 평화를 위해 모두 기도합시다”

고등학교 때 만나 멤버 교체 없이 43년간 밴드를 이어온 U2는 남다른 체력을 자랑했다. [연합뉴스]

고등학교 때 만나 멤버 교체 없이 43년간 밴드를 이어온 U2는 남다른 체력을 자랑했다. [연합뉴스]

공연하는 지역마다 맞춤형 평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도 유명한 U2는 이날 공연 도중 여러 차례 남북 관계를 언급했다. 마지막 곡으로는 베를린 장벽 붕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원(One)’을 택했다. 독일이 통일된 1990년 베를린 한자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곡이다. 보노는 “남북으로 나뉜 우리 땅으로부터, 그리고 여러분의 땅으로부터”라고 고국 아일랜드와 한국의 상황을 함께 언급하며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이어나갔다. 그는 “평화로 가는 여정에서 배운 것이 있다. 가장 강력한 단어가 ‘타협’이라는 것”이라며 “평화로 향하는 길은 우리가 하나가 돼 노력할 때 찾을 수 있다”며 기도와 참여를 당부했다. 곡 말미에는 스크린에 태극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보노는 9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추진 중인 ‘비핵ㆍ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보노는 빈곤ㆍ질병 퇴치 캠페인 기구 ‘원’을 설립해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오르기도 했다. 이번 방문에서는 비무장지대(DMZ) 일정이 포함돼 있지 않지만 “한국에 오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곧 다시 올 것”이라고 약속한 만큼 향후 DMZ 공연이 성사될지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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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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