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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의 역습…2019 국민가요 된 앤 마리 ‘200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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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올해만 세 차례 내한한 영국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는 ’한국 팬들은 한마디로 ‘퍼펙트’하다“며 ’공항에서부터 반겨줘 이후 모든 일정을 최고로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사진 워너뮤직코리아]

올해만 세 차례 내한한 영국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는 ’한국 팬들은 한마디로 ‘퍼펙트’하다“며 ’공항에서부터 반겨줘 이후 모든 일정을 최고로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사진 워너뮤직코리아]

영국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28)가 부른 ‘2002’의 기세가 대단하다. 지난해 4월 발표된 이 곡이 올해 국내 종합 디지털차트 1위에 오를 것이 확실해진 것. 가온차트에 따르면 지난달 23일까지 ‘2002’가 기록한 가온지수는 9억7382만점으로 2위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8억7811만점)과 약 1억점가량 차이가 난다. 가온지수는 스트리밍, 다운로드, BGM 판매량에 가중치를 부여해 집계한 점수로 팝송이 가온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은 2010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가온차트 올해 종합 순위 정상 예약 #가요 아닌 팝송 1위는 사상 처음 #틱톡 등 SNS 배경음악으로 주목 #호날두와 비교된 무료 공연도 화제

한국 팬들의 사랑은 해외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독특하다. ‘2002’가 수록된 앨범 ‘스피크 유어 마인드(Speak Your Mind)’는 지난해 발매 당시 영국 UK 앨범 차트 3위에 오르면서 오스트리아·독일 등 유럽에서 사랑받기 시작해 미국·일본 등으로 퍼져 나갔다. 반면 한국에서는 올해 들어 100위권에 진입해 6월에 월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타이틀곡 ‘프렌즈(Friends)’나 이후 발표한 신곡 ‘퍼펙트 투 미(Perfect To Me)’ 등을 제치고 역주행한 셈이다.

이는 앞서 역대 연간 차트에서 최고 순위를 기록한 팝송과도 다른 부분이다. 2017년 4위를 기록한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의 ‘셰이프 오브 유’나 2015년 9위에 오른 미국 밴드 마룬 5의 ‘슈가’가 전 세계를 강타한 메가 히트곡이라면 앤 마리는 2014년 영국 밴드 루디멘탈의 객원 보컬로 시작한 신예다. 아홉 살 때 입문한 가라테 이야기를 담은 미니앨범 ‘가라테’(2015)로 솔로 활동을 병행했지만, 클린 밴딧의 ‘라커바이’(2016) 등이 장기 흥행하면서 피처링 아티스트의 느낌이 강했다. 같은 레이블에 소속된 에드 시런의 유럽 투어에 동행했으나 국내 인지도는 무명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2002’는 어떻게 한국에 상륙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음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유튜브나 틱톡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영상으로 먼저 접한 곡을 음원사이트에서 찾아본다는 것이다.  ‘2002’는 특히 틱톡에서 ‘손댄스’ 등 각종 챌린지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지난 4월 앤 마리의 첫 단독 내한공연을 기획한 프라이빗커브의 김지예 실장은 “SNS 반응을 체크해 보니 인스타그램보다 틱톡에서 젊은 층의 지지가 압도적이었다”며 “실제 공연장에도 20~30대보다 초중고생 관객이 더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유튜브 영상 역시 한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브라이튼 뮤직홀 공연의 경우 원본 영상 조회 수는 약 2100만회인 반면 한국어로 번역된 가사가 첨부된 영상은 1300만회에 달한다. 전체 조회 수의 30% 이상이 한국에서 발생한 셈이다. “영원히 기억할거야 네가 키스하던 날 2002년 그해 여름” 같은 가사가 눈에 쏙쏙 들어올뿐더러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베이비 원 모어 타임’(1998) 등 당시 유행가 가사를 차용해 밀레니얼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효과도 있다.

번역 작업을 진행한 황석희 영화번역가는 “영상을 보는 동안 자동음성지원이 되는 것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가능하면 의역을 하더라도 음절 단위로 맞추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하이틴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없던 추억도 생기는 기분” 같은 댓글이 쏟아졌다. 황 번역가는 “영화 ‘원스’의 주제가 ‘폴링 슬로울리’나 ‘비긴 어게인’의 ‘로스트 스타’처럼 서정적인 멜로디의 곡들이 한국에서 특히 반응이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7월 홀리데이랜드 페스티벌 내한 당시 ‘개념 아티스트’로 주목받은 것도 한몫했다. 페스티벌 측이 “우천으로 인해 뮤지션 요청으로 공연이 취소됐다”고 밝히자 앤 마리는 이를 반박하며 무료 게릴라 공연을 열어 인스타그램으로 생중계했다. 비슷한 시기 내한한 이탈리아 유벤투스FC 소속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친선경기에 ‘노쇼’한 것과 비교돼 더욱 화제를 모았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SNS가 활성화되면서 노래뿐만 아니라 외적인 메시지도 아티스트의 음악에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며 “앤 마리나 빌리 아일리시가 던지는 다양한 화두가 젊은이들의 고민과 맞닿아 있어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꾸준한 인기에 힘입어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네이버 브이라이브 어워즈 V하트비트에서 ‘페이보릿 아티스트 월드와이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만 세 번째 내한한 앤 마리 역시 한국 팬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며 딩고의 세로 라이브, ASMR 영상 등 프로모션 참여에도 적극적이다. 팬들의 사전 질문을 모아 진행한 음반사 워너뮤직코리아 인터뷰를 통해 “2002년은 가라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해라 더욱 특별하다”고 밝힌 그는 “한국 노래방에서 경험을 담은 노래도 쓰고 싶다” “한국 팬이 담가준 술을 무대에서 마시고 싶다” 등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했다.

국내 음악 시장이 다변화되면서 앤 마리 같은 깜짝 스타가 등장할 가능성도 커졌다. 가온차트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은 “400위권 내 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6.2%에서 지난해 23.9%로 지난 10년간 크게 늘었다. 올해는 25%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며 “SNS 덕에 발매 시점과 유통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조지메이슨대 이규탁 교수는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가요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했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팝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며 “각종 SNS를 통해 K팝이 세계시장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세계 각국의 음악이 한국시장에서 확산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교류의 결과”라고 밝혔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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