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2% 안되면 무역으로 보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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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29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가운데 8개국 정상만 따로 불러 오찬을 했다. ‘2퍼센터스(Percenters)와 실무 오찬’이라고 이름까지 붙였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방위비 연체국’ 프랑스·독일 및 캐나다 등을 향해 “2% 방위비를 채우지 않으면 무역으로 걸겠다”며 관세 카드를 꺼냈다.

트럼프, 2% 넘긴 나토 국가와 오찬 #못 채운 프랑스·독일엔 관세 경고 #“그들은 어떻게든 돈 내게 될 것” #EU는 디지털세 강행, 미국에 맞불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영국 런던에서 나토 정상회의와 별도 일정으로 8개국을 초청했다.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방위비 지출 약속을 지킨 영국(2.14%)·그리스(2.28%)·폴란드(2.00%)·불가리아(3.25%)·루마니아(2.04%)·에스토니아(2.14%)·라트비아(2.01%)·리투아니아(2.03%) 정상들이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많은 수의 나라는 이 목표(2%)를 충족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2016년보다 한 해 1300억 달러를 추가로 걷고 있지만 향후 3년 이내 증액 숫자가 4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뒤 “만약 그들이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무역으로 걸 것”이라며 “어떻게 되든지 그들은 돈을 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비공개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석상에서도 “무역 불균형까지 고려한다면 미국은 나토 방위비의 90%를 지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날 한국과 방위비 분담(SMA) 협상과 관련해선 주한미군 규모 유지 여부를 놓고 협상 카드로 연계한 데 이어 나토에선 유럽 주요 국가와 무역 적자에 연계할 수 있다고 위협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나토 회원국 방위비 증액 압박은 같은 날 국내에선 하원 법사위가 탄핵 청문회를 개최한 가운데 자신은 큰 외교 성과를 냈음을 과시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그는 오찬 뒤 트위터에 “가짜 언론은 나의 아주 성공적인 나토 정상회의 성과를 무시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나는 나토 정상들과 엄청나게 잘 지냈고 연 1300억 달러를 더 내게 했고, 3년 내 4000억 달러가 될 것이다”라고 적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디지털세(구글세)’를 놓고도 첨예하게 맞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보복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은 디지털세 도입을 강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글의 조세 회피 혐의를 조사 중인 한국 정부의 셈법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 한국을 포함한 총 27개국이 디지털세 도입을 확정했거나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디지털세가 불공정하게 자국의 IT기업을 겨냥한 조치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는 24억 달러(2조8615억원)에 달하는 프랑스산 샴페인·화장품 등에 최대 100% 관세를 물리겠다며 대서양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돈을 벌면 세금을 낸다’는 조세원칙에 따르면 디지털세 도입은 당연한 일이지만, 디지털세가 적용되는 대표 기업이 미국의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우버·에어B&B라, 대부분 국가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갈등을 우려해 디지털세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한국 정부도 디지털세를 추진할지는 미지수다. 디지털세 논의가 IT기업에서 가전·스마트폰 등 제조업까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삼성전자·LG전자도 디지털세 과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배정원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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