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권 무기삼아 계약갑질…법원 "퀄컴 1조대 과징금 정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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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통신업체 퀄컴이 휴대전화 제조업체 등에 부당한 계약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1조원대 과징금이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세계적인 통신칩셋 및 특허 라이선스 사업자 퀄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1조300억원의 과징금 부과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뉴스1]

세계적인 통신칩셋 및 특허 라이선스 사업자 퀄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1조300억원의 과징금 부과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뉴스1]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노태악)는 4일 퀄컴 인코포레이티드, 퀄컴 테크놀로지 인코포레이티드, 퀄컴 CDMA 테크놀로지 아시아퍼시픽 PTE LTD 등 3개사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에서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이 제기된 뒤 2년 9개월여 만에 나온 이날의 판결은 사법부가 내놓은 첫 판단이다. 공정거래 소송은 서울고법이 1심, 대법원이 2심을 맡는 2심제로 진행된다. 공정위 처분의 적법여부를 신속히 판단하기 위해서다.

퀄컴, 뭐가 문제였나

퀄컴의 본사인 퀄컴 인코포레이티드는 특허권 사업자로 휴대전화 생산에 필수적인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SEP)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2개사는 이동통신용 모뎀칩셋(데이터를 디지털로 변환해주는 이동통신 핵심 부품)의 주요 제조사다.

표준필수특허란 해당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는 관련 제품을 생산·판매하기 어려울 정도의 핵심 특허다. 특허권자는 프랜드(FRAND: 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건으로 특허 라이선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위는 퀄컴이 이를 지키지 않고 다른 모뎀칩셋 제조사와 휴대폰 제조사 등에 이른바 ‘갑질’을 했다고 봤다. 삼성·인텔 등 모뎀칩셋 제조사가 계약 체결을 요구하면 이를 거부하거나 판매처를 제한해 실질적인 특허권 사용을 제한했고, 자사 모뎀칩셋을 구매하려는 삼성전자·LG전자·애플 등 휴대폰 제조사들을 상대로 불리한 계약을 강요했다고 판단했다.

휴대폰 제조사들에게는 필수적이지 않은 특허권 계약을 끼워팔거나 휴대폰 판매가격의 일정 비율을 ‘실시료’ 명목으로 받기도 했다는 게 공정위 시각이다.

퀄컴 과징금 사건

퀄컴 과징금 사건

2016년 공정위는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와 불공정 거래를 했다고 판단해 역대 최대 규모인 1조300억 원의 과징금을 매기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퀄컴은 2017년 2월 서울고법에 소송과 함께 시정명령 효력정지 신청을 제기했다. 퀄컴측은 “업계 관행을 따랐을 뿐,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원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맞아…과징금 적법”

법원은 퀄컴의 행위가 전반적으로 시장지배적 남용 행위가 맞다고 보고 공정위가 부과한 1조 원대 과징금이 정당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퀄컴이 삼성이나 인텔 등 다른 모뎀칩셋 제조사에게 자사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에 관한 라이선스를 거절·제한한 것과 휴대폰 제조사를 상대로 모뎀칩셋 공급계약과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연계해 체결한 것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가 맞다고 판단했다. 다만 휴대전화 제조사에 끼워팔기식 계약을 요구하거나 실시료 등을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총 10개의 시정명령 가운데 2개를 제외한 나머지 시정명령은 적법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과징금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인정된 부분만으로도 과징금납부명령 유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거나 불공정 거래를 했다고 인정되지 않은 행위는 앞서 인정된 행위의 효과가 반영된 구체적 내용에 불과하다”며 “인정된 행위를 토대로 산정한 과징금이 적법하다고 판단하는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퀄컴의 패소로 국내 제조사들은 향후 퀄컴에게 납부하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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