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대량 살처분…탐욕이 부른 참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61호 24면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캐스린 길레스피 지음
윤승희 옮김
생각의길

돼지 핏물로 온통 빨간색인 임진강물 풍경은 충격적이다. 이번 돼지 열병은 사람에게는 무해하다지 않나. 전염병이 손 쓸 수 없이 확산돼 양돈농가가 나자빠지고 우리의 저녁 식탁이 빈약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근원적으로는 더 배불리 먹으려는 인간 욕망이 부추긴 참사 아닌가. 같은 동물로서(인간도 동물 아닌가) 업보라는 게 있다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 맞춤하게 나온 책이다. 미국에서 작년에 나온 책인데, 표지가 드러내듯 낙농업을 문제 삼았다. 육우 생산업보다 덜 야만적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저자가 전하는 낙농장 살풍경은 그 이상이다. 수컷은 도살되고 암컷은 출산능력을 쪽쪽 빨린 다음 역시 도살되니 오히려 더하다.

마음 약한 독자를 위해(섣불리 책을 펼쳤다가 육식을 포기, 비건으로 전환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독서 지면을 제한하는 심의제가 필요해 보이는데 가령 꼬리나 뿔 절단 대목이 그렇다.

소꼬리는 소통, 파리 퇴치, 체온조절도 하는 정서적·사회적 신체부위다. 꼬리 절단이 우유 품질에 관련된 유선염 발병을 줄인다는 어떤 과학적 증거도 없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자르는데, 거세집게로 꼬리뼈를 부러뜨리거나 3~7주 고무줄로 묶어 꼬리를 괴사시킨다. 잘린 부위는 지혈을 위해 인두로 지진다. 그런데 소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게 문제다. 사람처럼 절단된 신체부위의 존재를 느끼는 환각지 증상을 보이는 소도 있다고 한다.

더한 대목은 해마다 남아돌아 버려지는 우유의 양이 막대하다는 점. 그런데도 낙농업은 해마다 성장세다. 그 와중에 젖소는 더이상 동물이 아닌 우유와 고기의 생산단위로 추상화된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덜 부담스럽게 야만을 저지른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인간의 필요를 동물 권익보다 우선시하는 인간중심주의에 반대한다. 세상은 온통 연결돼 있어, 동물 권익 보호는 당신 일, 나는 내 일, 이런 식의 분리주의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번역도 깔끔하다. 좋은 책이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