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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겐 동맹보다 석유?…쿠르드 배신 뒤 시리아 유전에 탱크 배치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방침을 바꿔 시리아 동부에 미군을 주둔하기로 했다고 미 언론들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왼쪽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오른쪽은 마크 밀리 합참의장.[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방침을 바꿔 시리아 동부에 미군을 주둔하기로 했다고 미 언론들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왼쪽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오른쪽은 마크 밀리 합참의장.[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동맹 쿠르드족을 버렸다는 지적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철군 발표 이후 터키는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펼쳐 쿠르드 민병대 시리아민주군(SDF)을 몰아냈다.

트럼프. 동부 유전지대 주둔 계획 #이달 초 시리아 철군 방침과 상반 #IS로부터 석유 보호 명분 내세워 #가디언 "트럼프 발언은 모순"

지난 6일 시리아 주둔 미군의 장갑차가 시리아 북동부 라스 알아인에서 떠나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 6일 시리아 주둔 미군의 장갑차가 시리아 북동부 라스 알아인에서 떠나고 있다.[AFP=연합뉴스]

하지만 미국이 기존 방침을 뒤집고 시리아에 상당수 병력을 남기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24일(현지시간)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백악관이 시리아 북동부에 500여 명의 병력을 남기고, 탱크 수십 대를 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추진한 미군 철수 계획과는 크게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 주둔하던 미군 1000여 명의 철수를 명령했다가, 역풍이 일자 200∼300명의 병력은 시리아 남부 기지에 잔류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왔다.

미국이 방침을 바꾼 것은 시리아 데이르에즈조르를 중심으로 한 동부 유전지대 때문이다. WSJ는 “미군의 시리아 주둔 목적이 IS 격퇴에서 시리아 유전 보호 쪽으로 수정됐다”고 분석하며 “미국이 해당 유전지대를 향후 시리아와의 협상 도구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런 내용은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터키의 시리아 침공과 관련해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과 만난 자리에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 철수 방침 발표 직후인 지난 7일 미군의 시리아 배치 지역. 24일 미 폭스뉴스는 미군이 시리아 철군 방침을 바꿨으며 시리아 동부 유전지대 데이르에즈조르를 중심으로 병력을 배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 철수 방침 발표 직후인 지난 7일 미군의 시리아 배치 지역. 24일 미 폭스뉴스는 미군이 시리아 철군 방침을 바꿨으며 시리아 동부 유전지대 데이르에즈조르를 중심으로 병력을 배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연합뉴스]

미 국방부도 이날 시리아 유전 보호를 위해 추가로 군사 자산을 배치하겠다는 구상을 공식화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은 시리아 북동부의 SDF와 협력해 유전이 IS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추가적인 군 자산을 투입해 미국 입지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과 동맹이 IS 격퇴전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IS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시리아 동부 유전을 장악하게 된 것”이라며 IS의 유전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어떤 종류의 군 자산 배치를 검토 중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폭스뉴스는 미군이 탱크와 군인 수백명으로 구성된 부대를 데이르에즈조르 지역에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군 탱크가 시리아에 배치되는 건 처음이다. 탱크는 현재 중동의 다른 지역에 배치된 미군 부대의 탱크를 사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우리는 결코 재건된 이슬람국가(IS)가 유전 관련 시설을 갖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시리아 유전시설에 미군을 배치할 것을 시사했다.[사진 트럼프 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우리는 결코 재건된 이슬람국가(IS)가 유전 관련 시설을 갖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시리아 유전시설에 미군을 배치할 것을 시사했다.[사진 트럼프 트위터]

미군의 철군 방침 선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군 철수를 명령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들어 시리아 유전지대에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23일 “우리는 석유를 확보했고, 따라서 소수의 미군이 석유를 보유한 지역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24일엔 “되살아난 IS에게 결코 (시리아) 유전이 넘어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엔 “쿠르드족은 우리와 같이 싸웠지만, 그러기 위해 그들에게 엄청난 돈과 장비가 들어갔다”며 “나는 거의 3년 동안 (쿠르드족과 터키와의) 싸움을 막았지만, 이제 말도 안 되는 전쟁에서 벗어나 우리 군인들을 집으로 데려올 때”라고 밝힌 바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는 미군을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했지만, 시리아 동부지역 유전을 지키기 위해 탱크 등 기갑부대를 배치한다면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 이전보다 더 많은 미군이 필요할 것”이라며 “트럼프의 모순된 발언의 속내는 결국 쿠르드 근거지를 뺀 동부 유전 지역만 보호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르드족과 터키와의 분쟁에는 휘말리고 싶지 않지만, 시리아 내 유전은 장악하겠다 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란 것이다.

24일 시리아 북동부 탈 아브야드 주민이 트럭에 몸을 싣고 피란을 가고 있다.[AFP=연합뉴스]

24일 시리아 북동부 탈 아브야드 주민이 트럭에 몸을 싣고 피란을 가고 있다.[AFP=연합뉴스]

이 같은 트럼프식 ‘계산서 외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나오고 있다. 얀 에겔란트 유엔 시리아 인도주의 자문관은 가디언에 "터키의 시리아 침공 이후 약 18만명의 이 지역 주민이 피란을 떠났다"며 "(미국과 터키의) 즉흥적이고 급작스런 거래로 수많은 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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