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 몸값 올리기' 또 벼랑끝 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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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2일 핵 재처리를 완료했고, 이를 통해 얻은 플루토늄을 핵 억제력 강화 쪽으로 용도를 변경했다고 밝혀 파장이 예상된다. 핵 재처리 완료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인 데다 '용도 변경'언급은 사실상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지난 1월 "우리의 핵활동은 평화적 목적에 국한될 것"이라고 밝힌 것을 무효화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더 나아가 지난 2월 가동한 5MWe 원자로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도 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번 입장 표명으로 차기 6자회담 교섭 과정은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이번 발표가 상황을 악화시키는 언행을 하지 않기로 한 1차 6자회담의 합의사항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이달 중 방북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 강경파가 미 행정부의 북핵 대화해결 노선에 대해 제동을 걸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의 이번 발표로 대북 경수로 사업 중지 문제에 대한 관련국 간 협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경수로 사업은 그동안 공정을 늦추는 속도 조절에 들어간 상태다. 우리 정부로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대한 입장 정리도 요구받게 됐다.

북의 핵 재처리 완료 및 핵무기 개발 입장으로 이 선언이 사문화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번 발표는 전체적으로 차기 6자회담 교섭 과정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벼랑끝 전술의 색채가 짙어 보인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의 이번 담화는 2차 6자회담을 앞두고 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고 가기 위해 '몸값 올리기'차원에서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담화는 또한 그동안 미국에 요구해왔던 적대시정책 포기 등을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의 인상도 풍긴다. 담화가 한.미.일 3국의 북핵 실무협의회(9월 29~30일) 직후에 나온 것이나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억제력 강화를 연계시키는 데서 이는 잘 드러난다. 미국은 북핵 실무협의회에서 북한을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대북 협상안을 내놓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북한의 이번 담화로 남북 관계가 곧바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북한의 재처리 완료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노골적으로 핵개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정부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는 일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협의회를 열고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북한이 핵 재처리 완료를 공식화하고, 플루토늄 원자탄 생산을 시사한 만큼 공식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핵 재처리의 결정적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만큼 북한 담화에 대한 대응은 별도로 하지 않고 미국과 더불어 관련 정보 수집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이다.

그런 만큼 차기 6자회담 등에 대한 대응은 한.미의 핵 재처리 관련 정보 평가가 끝난 다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오영환.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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