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DIZ 평행선 러시아…우발적 충돌 안된다며 핫라인엔 미지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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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러시아 군 당국이 24일 직통전화(핫라인) 설치 등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 진입과 관련된 문제를 놓고 논의를 이틀째 이어갔지만 결론을 내놓지는 못했다. 일단 양국 간 우발적 충돌 방지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고, 향후 협의를 이어간다는 게 군 당국의 공식 입장이다.

러시아 군용기 6대 KADIZ 진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러시아 군용기 6대 KADIZ 진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합동참모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남완수 합참 작전3처장(공군 준장)을 대표로 하는 대표단은 러시아 장성(소장)급 인사 등과 전날(23일) 시작된 한·러 합동군사위원회의를 이어갔다. 군 소식통은 “비공개로 열린 해당 회의의 마지막 날인 이날 역시 공개할 만한 결과물은 없다”며 “비행정보 교환을 위한 핫라인 설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긴 했지만 양해각서(MOU) 체결을 언급하기엔 이른 시점”이라고 말했다.

당초 군 안팎에선 이번 회의에서 핫라인 MOU 체결 여부가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2004년부터 시작된 양국 공군 간 핫라인 설치 논의는 지난해 11월 MOU 문안 협의가 완료되면서 진척을 보이는 듯했다. 합참 역시 이달 초 국회 업무보고에서 올해 한·러 합동군사위원회 개최 사실을 알리며 MOU 체결시기 및 형식에 대해 추가 협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시기적으로도 지난 7월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지난 22일 KADIZ 무단 진입 사건이 발생하면서 핫라인 설치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평가다.

지난 22일 KADIZ 무단진입한 A-50 조기경계관제기(위)와 TU-95 장거리 폭격기.[일본 방위성 통합막료감부 제공자료 캡처, 러시아 국방부 영문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지난 22일 KADIZ 무단진입한 A-50 조기경계관제기(위)와 TU-95 장거리 폭격기.[일본 방위성 통합막료감부 제공자료 캡처, 러시아 국방부 영문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결과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논의 속도를 놓고 양국 간 이견 때문 아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 대표단은 최근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진입에 강력히 항의하고, 재발방지를 요청했지만 러시아 대표단은 “영공 침범을 하지 않았으므로 문제될 만한 비행이 아니었다”는 기존 의견을 고수했다고 한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 항공기가 진입하기 전 사전 통보하는 게 국제 관례다. 방공식별구역을 운용하지 않고 타국 방공식별구역 역시 인정하지 않는 러시아 입장에선 이 같은 국제 관례도 필요 없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군 내부에선 러시아 측이 이번 회의에 핫라인 설치가 진도를 내면 KADIZ 무단 진입을 방지한다는 명분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타국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는 모양새는 물론 사전 통보 원칙을 받아들여 기습 훈련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관련 업무에 관여했던 전직 군 장성은 “한·러 핫라인은 기술적인 부분에선 설치에 아무 지장이 없다”며 “양국의 신뢰가 그만큼 돈독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거나 러시아 측의 득실 계산이 계속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군 당국자는 “이번 회의는 실무급 만남으로 실제 MOU 체결을 위해선 또 다른 계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회의에선 우발적 충돌 방지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공동의 노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협의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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