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나섰다 아웃팅 당할라" 조국 떠나는 소장파 검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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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낙연 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조국 법무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낙연 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이렇게 아웃팅 될 순 없다, 조국 장관이 검찰을 바꾸긴 어려운 상황 아니냐"

일선 검사들 "검찰 개혁 동의해도, 지금 조국 돕긴 어려워" #법무부 "텔레그램으로 검찰 개혁 제안 많이 들어와"

검찰 개혁을 주장해 온 한 현직 검사가 최근 동료 검사들에게 한 말이다.

이 검사는 조국(54) 법무부 장관이 추진하는 제2기 검찰·법무 개혁위원회에 합류하라는 동료의 제안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웃팅(outing)은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이 본인 동의없이 밝혀지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이 검사는 조 장관 하에서 자신의 개혁 성향이 드러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며 이를 '아웃팅'에 비유했다.

그의 동료 검사는 "조 장관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조 장관의 검찰 개혁에 진정성이 있는지 신뢰하기가 어려워 검사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상황"이라 말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20일 오전 '검사와의 대화' 자리를 위해 경기도 의정부지방검찰청에 도착해 구본선 의정부지검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전민규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이 20일 오전 '검사와의 대화' 자리를 위해 경기도 의정부지방검찰청에 도착해 구본선 의정부지검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전민규 기자

조국 검찰 개혁에 냉소적인 검사들 

취임 3주차에 접어든 조 장관은 사실상 모든 행보를 검찰 개혁에 집중하고 있다.

현직 법무부 장관으론 최초로 자택 압수수색까지 당했지만 다음날인 24일 조 장관은 전국의 검사들에게 검찰 개혁에 관한 의견을 직접 듣겠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25일엔 천안지청에서 취임 후 두 번째 '검사와의 대화'를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취임 후 검찰개혁 행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조국 법무부 장관 취임 후 검찰개혁 행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하지만 조 장관의 검찰 개혁을 바라보는 검찰 내부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문제는 그런 시선이 특수부 출신의 이른바 주류 엘리트 검사와 간부들뿐 아니라 검찰 내 비주류로 분류되는 형사부 검사와 개혁 성향의 저연차 검사들로까지 퍼져간다는 것이다.

"임은정, 서지현 말고도 개혁적 검사 많아"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내부에는 SNS에서 유명한 임은정·서지현 검사 말고도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검사들이 많다"며 "이들 중에는 한때 조 장관에게 기대를 걸었던 검사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사람이 조 장관에게서 떠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혁적 성향의 검사들마저 조 장관에게 등을 돌리는 이유는 조 장관 가족들이 수사를 받으며 조 장관의 검찰 개혁 방향이 변했다는 불신 때문이다.

조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주로 검경 수사권 조정에 집중했다. 검찰의 '직접(특수) 수사' 축소엔  큰 관심이 없었다.

23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방배동 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한 검찰 직원들이 압수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김상선 기자

23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방배동 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한 검찰 직원들이 압수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김상선 기자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끌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적폐청산 수사가 정권의 코드와 맞물려진 측면도 컸다.

이땐 청와대와 여당에서 피의사실이 포함된 보도가 쏟아져도 '피의사실 공표'를 문제삼지 않았다.

불쑥 튀어나온 조국 장관의 '특수부 축소' 

그랬던 조 장관이 취임 직후 검찰 특수부 축소와 피의사실 공표 관련 공보준칙 개정에 나선 것에 대해 검사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적 성향의 검사들 사이에서도 "가족이 수사받는 상황에서 이런 개혁을 하겠다는 장관의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에 있을 때부터 특수부 축소에 동의했다. 하지만 특수부의 수사를 받는 조 장관이 할 수 있는 개혁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2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조만간 소환될 예정인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최정동 기자

2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조만간 소환될 예정인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최정동 기자

일각에선 조 장관이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고 기소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조국 법무부에 합류하거나 돕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 장관의 임기와 그가 추진하는 법무부의 검찰개혁 계획이 얼마나 지속될지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조 장관이 검찰 특수부 축소와 형사부 강화라는 과제라도 완성하고 그만두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텔레그램으로 제안 많이 들어온다"

법무부에선 검찰 내부의 냉소적 분위기는 인지하고 있지만 "비공식적으로 검찰 개혁에 대한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입장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20일 의정부지검에서 열린 '검사와의 대화'를 마친 뒤 구본선 의정부지검장과 함께 청사를 나서고 있다. 전민규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20일 의정부지검에서 열린 '검사와의 대화'를 마친 뒤 구본선 의정부지검장과 함께 청사를 나서고 있다. 전민규 기자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검찰 개혁추진지원단에게 비공식적으로, 또 법무부 관계자 개개인의 텔레그램 메시지 등으로 검사들의 제안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 장관이 검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만큼 이에 답장하거나 화답하는 검사들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또다른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선 검찰 개혁의 내부 동력이 떨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국회 동의없이 추진가능한 다양한 개혁 과제를 모아 곧 속도감있게 추진할 것"이라 말했다.

그럼에도 검찰 내부 구성원의 동의와 도움 없이 밀어붙이는 검찰 개혁이 가능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이 상당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1년 저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게 끌려가선 안되지만 검찰 내부 구성원의 동의와 도움도 개혁의 중요한 동력이라 강조했었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사들은 모두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잘 나가는 줄 안다"며 "그런 검사들을 이끌며 개혁을 하려는 장관은 실력과 도덕적 권위, 카리스마를 갖춰야 한다. 지금 조국 장관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있느냐"고 답답해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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