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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수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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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문현경 기자 중앙일보 기자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

금·은·흙 수저 얘기가 번질 땐 몰랐다. 직장생활엔 다른 수저론이 있다는 것을. 색깔 수저론은 ‘자기가 먹을 수저는 자기가 들고나온다’는 속설에서 기인한 것이겠으나, 물고 태어난 수저와 식당에서 쓰는 수저는 달랐다. 사회인의 식당에선 자기가 먹을 수저를 스스로 놓지 않는 계급과 자기가 먹지 않을 수저까지 놓는 계급이 나누어져 있다. 앉은 자리의 위치, 건배하는 술잔의 높낮이를 관찰하면 옆 테이블 일행의 서열도 맞출 수 있다. 물론 이런 규칙을 모르면, 봐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사회생활’을 걱정한 선배들이 많았다. 걱정에도 규칙이 있어, 대개 “나는 괜찮은데, 다른 선배들이랑 있을 땐”으로 시작해 “이것이 사회생활이다”로 끝난다. 눈치는 없었지만 학습능력은 있어 다행이었다. 숟가락·젓가락·앞접시 놓기와 물 따르기까지의 속도는 나날이 기록을 경신했다. 자기 주도적 학습도 놓치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차 탈 때 상석 위치’ 등 각종 상황에서의 예절을 익혔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사회생활’에 몰입하다 보니 이전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또래 모임에서도 누가 수저를 놓는지, 집게를 드는지 주시하게 됐다. 그것들은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권리와 의무를 상징하는 물건이 돼 버렸다. 최악인 것은, 나처럼 수저통 앞에 정지된 후배를 보면 내가 들었던 핀잔이 떠오르며 나도 그걸 뱉어보고 싶은 욕구가 씰룩대는 것이었다. 아, ‘꼰대’는 식사자리에서부터 옮는, 수인성 전염병이었다.

‘사회생활’이란 실은 ‘내가 바꾸지 못한 사회’에서 ‘네가 생활하는 법’이 아닐까. 하박상후의 임금구조에서 “이런 건 막내가 해야지”를 기쁘게 받아들일 막내가 누가 있었을까. 사실은 모두가 하기 싫었고, 조금은 불편했지만, 곧 새 막내가 올 날만을 기다리며 참아뒀던 것은 수저만이 아닐 거다. 그 날이 오면 ‘내가 겪은 만큼은 너도 겪어봐’를 보다 세련된 말로 구전하며 규칙은 이어진다. 이걸 끊으려면 새로운 수저론이 필요할 거다. ‘자기가 먹을 수저는 자기가….’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