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국가보안시설인데, 드론에 무방비로 뚫린 한빛원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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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29일과 지난 7일 무허가 드론이 출몰한 한빛원전 6호기 전경. [뉴스1]

지난달 29일과 지난 7일 무허가 드론이 출몰한 한빛원전 6호기 전경. [뉴스1]

지난 7일 오후 10시 12분쯤 전남 영광군 한빛원전(옛 영광원전). 인근 가마미해수욕장 부근에서 날아든 드론이 원전 쪽으로 접근하자 근무자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1급 국가보안시설인 한빛원전은 항공기·드론 등의 비행을 전면 금지하고 있어서다. 야간시간에 한빛원전 주변을 넘나들던 드론은 20여분을 비행한 뒤 시야에서 사라졌다. 영광경찰서 관계자는 “추적용 드론과 경찰특공대 투입 등을 통해 조종사를 색출 중”이라고 말했다.

원전 주변 3.6㎞ 비행금지구역 #두차례 2㎞ 내까지 유유히 비행 #범인 색출 못해 괴소문만 확산

최근 한빛원전에 정체불명의 드론이 출몰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국가보안시설 ‘가’급인 한빛원전 주변에서 지난달 29일에 이어 지난 7일에도 비행 중인 드론이 목격됐다. 한빛원전을 비롯한 원전의 경우 주변 3.6㎞ 내는 비행금지구역, 18㎞ 내는 비행제한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한빛원전에서 드론 주의보가 처음으로 내려진 것은 지난달 29일. 한빛원전 측은 이날 오후 8시 37분쯤 인근 가마미해수욕장과 계마항 부근을 날던 드론이 발견되자 즉각 관계기관에 알렸다. 가마미해수욕장의 경우 원전에서 직선거리로 2㎞가량 떨어져 있다.

원전 측은 발견 당시 자체 기동타격대를 출동시켰으나 조종사나 이착륙 지점 등을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 역시 군·해경 등과 공조해 드론 조종자 색출에 나섰으나 용의자를 확인하지 못했다.  드론의 크기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드론협회가 항공안전법에 따라 작성한 한빛원전 일대의 비행금지구역 캡처. 프리랜서 장정필

㈔한국드론협회가 항공안전법에 따라 작성한 한빛원전 일대의 비행금지구역 캡처. 프리랜서 장정필

원전 상공에 또다시 드론이 나타난 것은 지난 7일이다. 원전 측과 관계 당국의 조사에도 확인되지 않았던 미확인 드론이 9일 만에 다시 출현한 것이다. 이날 오후 10시15분쯤 나타난 드론은 인근 상공을 20분간 비행하다 유유히 사라졌다.

경찰은 드론을 날린 시간이 두 차례 모두 야간인 데다 비행 위치나 비행시간 등이 비슷한 점으로 미뤄 동일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원전은 공항·항만 등과 함께 전쟁 발발 시 타격목표 1순위에 해당하는 주요시설이라는 점에서 국가보안시설(가급)로 관리하고 있다. 항공안전법상 사전승인 없이 비행금지구역에서 비행체를 날리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도록 돼 있다.

미확인 드론의 잇따른 출현에 따라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확산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5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드론을 날린다” “영광 지역 곳곳을 돌며 장난감 드론을 조정하는 사람을 봤다” 등의 말이 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두 차례나 드론이 떴는데도 조종자를 찾지 못했다면 보안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비행하는 드론을 본 목격자의 진술과 촬영된 영상이 있음에도 조종자는 물론이고 드론의 크기나 용도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다. 한빛원전 측은 드론 등의 비행금지 안내 현수막을 설치하고, 드론 탐지 및 대응을 위한 방호장비 도입을 검토 중이다. 경찰은 “드론 전문가에게 사진 판독을 의뢰한 결과 최근 한빛원전 근처에서 출현한 드론은 촬영용 전문드론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며 “조종자가 확인되면 항공안전법 위반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부산 고리원전 인근에서 드론을 날리던 40대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다. 부산 기장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오후 3시35분쯤 고리원전 인근인 칠암방파제 인근에서 무단으로 드론을 날리던 A씨(41)가 적발됐다. 고리원전 인근에서는 지난달 12일과 13일에도 드론으로 추정되는 비행체가 나는 모습이 원전 방호직원에 의해 목격되기도 했다.

영광=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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