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시기 SLBM 쏜 美…北 향한 강력한 경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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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이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공개 발사 시험에 나섰다. 최근 미사일 시험에 박차를 가하는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염두에 놓고 억제력 차원의 시험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 해군이 지난 4일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 인근에서 쏘아올린 SLBM. [사진 미 해군]

미 해군이 지난 4일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 인근에서 쏘아올린 SLBM. [사진 미 해군]

미 해군은 6일(현지시간) 전략핵잠수함(SSBN)인 네브라스카함(SSBN-739)이 캘리포니아주 남부 인근 해안에서 SLBM인 트라이던트2-D5 시험 발사를 했다고 밝혔다. 모두 4발로 지난 4일 2발이, 6일 나머지 2발을 각각 쏘아 올렸다. 이례적으로 많은 숫자다. 이들 모두 발사시간대는 일출 전 새벽이었다.

미 해군은 해당 미사일의 궤적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항공기 비행을 모니터링하는 에어크래프트스폿(AircraftSpots)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남부 인근 해안에서 괌까지 날아가는 궤적으로 포착됐다. 약 8000㎞에 이르는 거리다.

미 해군은 “국제 정세와 관계없이 트라이던트2-D5의 수명 연장을 위한 성능 기대치를 검증하기 위해 이번 시험이 진행됐다”며 “이 미사일은 실제 탄두가 장착되지 않은(unarmed) 미사일”이라고 말했다. 트라이던트 2-D5의 시험 발사는 1989년 이후 176번째다.

정례적 성격이라는 미 해군의 설명에도 불구, 이번 발사의 시기가 미묘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선 미군에 직접 위협이 되는 북한의 행보를 겨냥했다는 해석이 꼽힌다. 북한이 한반도를 넘어 미군이 주둔하는 동북아 전체를 사정권으로 둔 미사일 개발에 나서 미국이 경고 차원의 움직임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미다. 북한은 올해 9차례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등 단거리 발사체 시험을 실시한 데 이어 사거리 1000~3000㎞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도 실전 배치했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지난 5일 발표한 상반기 패널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는 북한이 MRBM인 북극성 2호(KN-15)를 북·중 국경 인근 미사일 기지에 배치했다고 공개했다. 이는 발사 준비 시간을 단축하는 고체연료 미사일로 모든 주일 미군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직전 SLBM 시험 발사를 한 시기도 북한 견제론에 무게를 싣는다. 직전 미국의 시험 일시는 지난 5월 9일로 북한이 평안남도 구성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날 이뤄져 북한을 향한 경고장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에 대한 메시지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지난달 2월 탈퇴하면서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의지를 피력해왔다. INF 조약에 묶여 있는 사이 중국이 자유롭게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증강해 왔고,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은 실제 지난 6월 2일(현지 시간) ‘쥐랑(巨浪)-3’으로 추정되는 새 SLBM을 보하이만에서 시험발사했다. 거대한 물결을 뜻하는 ‘쥐랑’은 핵잠수함용으로 설계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사거리가 1만2000∼1만4000㎞에 달해 미 본토 및 전 유럽이 사정권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국 정부는 INF를 공식 탈퇴하면서 INF가 금지했던 지상발사형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마크 애스퍼 국방장관은 지난 3일 아시아를 순방하면서 INF가 금지했던 중거리 지상발사형 미사일을 아시아 지역에 새로 배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 8월 18일 캘리포니아주 샌 니컬러스 섬에서 지상발사형 순항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기도 했다.

미국이 러시아까지 염두에 두고 SLBM 발사 시험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지난 8월 24일 러시아 타스 통신은 러시아 해군이 개량형 중거리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을 성공적으로 시험 발사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지상발사용 중거리 탄도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응하고 중거리 탄도 미사일의 동아시아 동맹국 배치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의지라는 게 현지 언론의 해석이다.

미·러의 이 같은 움직임이 본격적인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푸틴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전체 회의에서 한국과 일본 등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미국 국방부의 발표에 대해 “미 중거리 미사일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수상함 기지와 캄차카 반도의 전략핵잠수함 기지를 겨냥하는 건 심각한 일”이라고 공개 경고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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