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기 수업은 그만 “교과서 넘어 토론으로 답 찾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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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2일 오전 대구 중구 경북대 사범대 부설 초등학교 6학년 3반 교실. 윤완호(12)군이 “생태계가 왜 있을까”라고 질문하자 옆 친구는 “생태계를 왜 배워야 하는지 궁금해”라고 했다. 학생들은 생태계와 연관된 질문을 각자 포스트잇에 썼다. 여기에는 생태계 개념부터 생태계 기준은 누가·왜·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수준 높은 고민이 포함돼 있었다.

국내 첫 공교육에 IB 도입한 대구 수업 풍경 #지난 2일 사대부초와 사대부중의 수업 참관 #1968년 시작한 국제 공통 대학 입학 과정 IB #대구 제주서 시작…고등학교는 2022년부터

학생들은 4명 1조를 만들어 포스트잇에 써놓은 질문을 평가하며 사실 중심인지 논쟁 중심인지 분류했다. 개념 등 사실 중심의 질문은 교과서를 통해 답을 찾았고 논쟁 중심의 질문은 각자의 의견을 내며 토론했다. 교사는 “교과서를 보자”라거나, “생태계는 무엇이다”는 등 답을 내놓지 않았다. 토론 시간을 적절히 배분하고 학생 질문에 방향만 제시했다.

이날 수업은 “생태계는 게임”, “생태계는 도돌이표” 등 학생들이 생태계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서 끝이 났다. 수업 후 윤창현(12) 군은 “답을 듣고 외웠던 수업과는 달리 내가 한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공부하고 친구들과 토론하니 훨씬 이해가 잘 된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과학 시간 같지만, 이 수업은 ‘우리가 만드는(UOI·Unit Of Inquiry)’이란 과목이다. 주제는 학생들이 선택했고 수업은 토론식이다. 권금주 교사는 “과학 수업에 특정 주제를 놓고 사고를 확장하다 보면 학생들은 국어·사회도 배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제 바칼로레아(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프로그램을 도입한 수업이다. IB는 스위스 비영리 교육재단이 나라를 옮겨 다니는 외교관 자녀를 위해 1968년 개발한 토론·논술형 교육 프로그램이다. 정답 맞히기를 위한 암기식·주입식 공부가 아니라 학생의 독창적 사고와 비판적 능력을 기르는 게 목표다. 토론식 수업이기에 시험은 논술형으로 진행되고 IB 본부에서 교육받은 다수의 교사가 여러 단계를 거쳐 채점한다.

국내에서는 경기외고·삼성고 등 15개 고등학교에서만 영어판 IB 프로그램을 수업해 왔다. 옥스퍼드·케임브리지·하버드 같은 명문대도 IB 전형이 있다.

국내 공교육에도 도입하자는 얘기가 나온 건 2017년부터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대구·제주교육청이 한국어판 IB 프로그램 도입에 나섰다. 이들 교육청은 지난 7월 IB 본부와 IB 프로그램을 한국어화하기 위한 협약을 했다. 대구교육청은 한국어로 번역된 IB 프로그램을 도입해 올 2학기부터 초등 1개교, 중학 1개교에서 IB 수업을 하고 있다. 교육청 차원으론 처음이다. 2022년에는 고교에도 도입한다.

IB 교육은 교사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대구에선 IB 도입을 신청한 44개교 교사가 인터넷 강의 등으로 IB 프로그램을 공부 중이다. 여름부터는 교사들끼리 주 1회 만나 수업 방향을 고민하고 의견을 나눈다. 김형구 경북대사범대부설중학교 체육 교사는 “10여년간 농구공 5번 넣기 같은 수업을 했지만, 지금은 함께 치어리딩 작품을 만드는 등의 협력 수업을 하기 위해 교재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강은희 대구교육감은 “IB 수업이 가능한 교사를 양성하면서 수업과 평가를 어떻게 바꿔 나갈지 고민”이라며 “단답형 정답 찾기 교육에서 탈피해 자기 생각을 꺼내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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