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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서 여성혐오·페북엔 세월호 모욕, 파면 당하는 막말 교수들

중앙일보

입력

지난 7월 3일 제자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A 교수의 연구실에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쪽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3일 제자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A 교수의 연구실에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쪽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교수 빼고 주위 사람과 사회는 다 변했는데 그걸 모르는 교수들이 많더라고요. 갑의 둔감함이라고 할까"

"교수 빼고 모두 변했는데"…'갑의 둔감함' 전형적 사례

최근 막말과 성추행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파면되는 교수들을 보며 한 국립대 교수 A씨가 전한 말이다.

A교수는 "아직도 주변 동료들을 보며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며 "교수들이 세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法 "여성혐오·세월호 모욕 교수 파면 정당"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16일 강의 시간에 "여대는 사라져야 한다""시집가는 게 취직하는 거다" 등 여성혐오 발언을 쏟아낸 사립 여대교수 김모씨의 파면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최근 여성혐오 발언 등 막말을 쏟아내는 교수들이 파면당하는 경우가 늘고있다. [중앙포토ㆍ연합뉴스]

최근 여성혐오 발언 등 막말을 쏟아내는 교수들이 파면당하는 경우가 늘고있다. [중앙포토ㆍ연합뉴스]

재판부(안종화 부장판사)는 김 교수가 페이스북에 "세월호 유가족을 언급하며 "죽은 딸 팔아 출세했네" 등의 과도한 정치적 발언을 한 것 역시 파면 사유라 봤다.

김 교수 측에서 "국무총리 표창, 대학총장 표창을 받은 점을 고려해달라"고 했지만 재판부는 "원고가 학생들에게 사과하는 등 반성하지 않고 교수 본연의 임무에 어긋난 중대한 비위행위를 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한 "김 교수는 평소 성차별적인 편견에서 기인한 여성 집단 자체에 대한 내부적 혐오의 감정을 비방, 폄훼, 조롱 등의 방법으로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2017년 8월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사건 공론화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최근 서울의 한 미용업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 살해를 사회문제로 공론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2017년 8월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사건 공론화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최근 서울의 한 미용업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 살해를 사회문제로 공론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20대 여성 '축구공'이라 표현한 교수도 

여성 혐오 발언으로 파면된 교수는 김 교수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5일 광주지방법원은 학생들에게 '걸레'라는 표현을 쓰고 "20대 여성은 축구공이라고 한다. 공 하나 놔두면 스물 몇 명이 오간다"고 발언한 순천대 교수 B씨의 파면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B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끼가 있어 따라다닌 것"이라는 모욕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대학가에선 이런 두 교수의 파면 소식에 대해 "학내 많은 사례들 중 하나일 뿐"이란 회의적 반응이 나온다.

서울 사립대 4학년에 재학중인 박모씨는 "최근에도 한 교수가 강의 중 '여자 치마는 짧을수록 좋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며 "그 교수님은 여전히 수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 "대자보 그만 쓰게 해달라"

지난달 26일 서울대에서는 서어서문학과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졸업생 김실비아씨가 1인 시위를 하며 해당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기도 했다.

서울대 졸업생 김실비아 씨가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A 교수에 대한 징계위 최종 판단을 앞둔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A교수 파면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 졸업생 김실비아 씨가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A 교수에 대한 징계위 최종 판단을 앞둔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A교수 파면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숙명여대 등 일부 여대에선 학생들이 대자보로 여성 혐오 발언을 했던 교수를 고발하며 "이런 대자보를 이젠 그만 쓰고 싶다"는 답답함을 표한 경우도 있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는 이런 교수들의 여성 혐오 발언이나 성추행 논란에 대해 그들이 학교 사회에서 가진 '갑의 위치' 때문이라 분석한다.

서 부대표는 "교수라는 권위를 갖고 공론장에선 할 수 없는 발언을 학생들에게 쏟아내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한 사립대 교직원은 "어떤 교수들은 '내 선배들은 더 했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는 억울함을 가진 경우도 많을 것"이라 전했다.

"젠더 감수성 떨어지면 버텨내기 어려워질 것" 

학교 사회가 미투 운동 이후 지난 몇년간 급변해 온 '젠더 문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성평등과 젠더감수성이 논의된 지는 채 몇년도 되지 않았다"며 "위계적인 대학 사회 속에서 일부 교수들이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조합원이 지난 4월 19일 경북대학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대 모 교수가 10년 전 당시 대학원생인 피해자를 강제로 입맞춤하고 연구실에서 껴안는 등 1년 동안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뉴스1]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조합원이 지난 4월 19일 경북대학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대 모 교수가 10년 전 당시 대학원생인 피해자를 강제로 입맞춤하고 연구실에서 껴안는 등 1년 동안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뉴스1]

다만 구 교수는 "대학 사회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젠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교수들은 버텨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 말했다.

교수들 "수업 중 발언 맥락 왜곡될까 겁나" 

중앙일보와 통화한 다른 교수들은 최근 미투 등 젠더 이슈와 관련해 "변화된 학생들의 인식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사립대 C교수는 "모든 학생들이 내 발언을 녹음한다는 생각으로 수업에 임한다"며 "전후 맥락이 삭제된 채 일부 말들이 SNS에서 왜곡될까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업 중 논쟁적인 이슈를 던져보고 싶지만 스스로 정치적인 검열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A국립대 교수도 "내가 무심코 한 말이 학생들에게 상처가 되거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수업 중 '조심해야지'라는 생각을 여러번 한다"고 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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