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죄 피하고자 뇌물줬다 진술했지만...대법, “자백 신빙성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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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임시 식당인 함바식당 운영권을 수주하기 위해 공무원에 뇌물을 줬다고 자백한 뇌물 공여자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사기죄로 처벌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실과 다르게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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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최근 뇌물공여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유상봉(73)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2개월 및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유씨는 2013년 7월 “강원도 동해시 북평공단 STX 복합화력발전소 건설 현장 함바식당 운영권을 수주했다. 시공사측이 요구하는 2억원을 주면 함바식당을 운영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윤모씨를 속여 총 2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12년에는 박모씨로부터 신보령화력발전소 1·2호기 등 신축공사장 함바식당 운영권을 위탁받게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9억2000만원을 받은 혐의도 적용됐다.

그러나 유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유씨는 피해자를 속이려던 것이 아니라 정말 운영권을 따내고자 2014년 2월 이후 약 3개월간 당시 부산시청 도시개발본부장인 A씨에게 운영권 청탁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부산 일대 건설 현장 함바식당 운영권 청탁과 함께 총 9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A씨는 뇌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1심은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씨 자백의 신빙성과 진실성을 의심할 사정이 있고, 검사가 제출한 다른 증거를 봐도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형량이 더 높은 사기죄로 형사처벌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실제로 뇌물공여죄는 사기죄에 비해 형량이 비교적 낮다. 형법 제133조에 따르면 뇌물을 약속하거나 공여 의사를 표시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반면 사기죄의 형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또 상습범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도 있다.

유씨는 2010년부터 경찰 간부, 공기업 경영진, 건설사 임원 등에게 뒷돈을 건네거나 함바 운영권을 미끼로 사기 행각을 벌여 구속됐다 풀려나기를 반복해왔다. 이미 수차례 재판을 받은 전적이 있는 유씨는 사기죄로 인한 가중처벌을 피하고자 이와 같은 거짓 자백을 한 것으로 보인다.

1심 재판부는 “함바식당과 관련하여 뇌물공여죄, 배임중재죄 등을 저질러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그 누범기간 중에 다시 이와 같은 범행에 이르렀다”며 윤씨에 대한 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유씨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박씨에 대한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심은 “종전에 실형 전과가 있고 누범에 해당하는 점을 고려해 법률상 선처가 불가능하지만 윤씨와도 합의한 정상을 고려해 형을 감축한다”며 1심이 선고한 징역 2년을 징역 1년2개월로 감형했다. 박씨에 대한 사기 혐의에 대한 형은 1심과 같았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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