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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겨냥한 황교안 칼···30년전 '사노맹' 끄집어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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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지배체제를 사회주의 혁명의 불길로 살라버리고자 전 자본가 계급을 향해 정면으로 계급전쟁의 시작을 선포한다.”

30년 전인 1989년 11월 12일 서울대 교정에는 이 같은 내용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하 사노맹) 출범선언문’이란 제목의 유인물 5백여장이 뿌려졌다. 곧바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유인물 배포에 관여한 성균관대 학생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노맹 사건’의 시작이었다.

89년 1월 140명의 출범 준비위원으로 시작한 사노맹은 1992년까지 노동자 중심의 전위 정당을 건설한 뒤 무장봉기로 혁명을 이룬 뒤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로 건설된 지하조직이었다.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학생운동권의 주류는 직접 선거로 구성된 총학생회의 연합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 건설 등으로 제도화의 길을 걸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사노맹의 이념과 사고는 주로 월간지 ‘노동해방문학’을 통해 전달됐다. 이 사건으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배후로 지목했던 백태웅씨와 박노해씨는 각각 대법원에서 징역 15년 형과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인기부가 사노맹 사건의 박노해씨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증거물로 압수한 1만4000여점의 책자와 유인물을 공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인기부가 사노맹 사건의 박노해씨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증거물로 압수한 1만4000여점의 책자와 유인물을 공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노태우 정부 시절의 대표적인 조직사건이었던 사노맹의 일원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김영삼 정부 들어서인 1993년이었다. 울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는 사노맹의 산하 기구인 ‘남한사회주의과학원’의 일원으로 활동했다는 혐의(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가입 등)로 구속돼 징역 1년 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다.

1995년 대법원은 조 후보자에 대한 판결문에서 이 단체에 대해 “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혁명을 통한 노동자계급 주도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정치적 단체로서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와는 서로 용납되지 않는 이적단체”라고 규정했다. 다만 형량은 1년, 집유 1년6개월로 확정됐다.

박씨와 백씨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풀려났고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됐다. 사노맹 주역들은 이후 갈라졌다. 백씨는 유학을 떠나 지금은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로 활동 중이고, 박씨는 시인 겸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정치권 인사 중에는 은수미 성남시장이 대표적인 사노맹 관련 인사다. 1992년 구속된 은 시장은 6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조 후보자는 2011년 11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국보법 위반 전력도 있고 청문회 통과를 못한다”고 했다. 조 교수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이 바로 '국보법 위반' 전력을 되살려내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검증이 본격화되면서다.

검사 경력 대부분을 공안 분야에서 보냈고 국가보안법 해설서도 집필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입장에겐, 교수 시절 국가보안법에 대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시대착오적이며 유례없는 법률”이라고 주장해 왔던 조 후보자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존재일 수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황 대표는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사노맹은 무장봉기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 달성을 목표로 폭발물을 만들고 무기 탈취 계획을 세우고, 자살용 독극물 캡슐까지 만들었던 반국가 조직”이라며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국가전복을 꿈꾸는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법무부 장관에 앉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대표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안보가 위태로운 상황인데 이런 사람이 법무부 장관이 되면 검찰이 과연 제대로 공정한 수사를 할 수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조 교수의 검찰 개혁 의지를 강조하며 “과거 낡은 권력기관에서 새로운 국민기관으로 거듭나라는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의 명령은 분명하다”며 “사법개혁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문재인 정부의 장관 내정과 사법개혁 의지는 분명하고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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