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억제만이 상책아니다|"사회악"...선입관 버리고 양질의 인력육성을|노령화로 생산성 낮아진 선진국도 참고할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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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의 「인구증가율 0%목표」 재검토와 관련, 지속적인 인구 억체정책을 주강한 이시백교수(서울대보건대학원)의 기고 (중앙일보 14일자) 에 대한 김수곤교수 (경희대 경영학과) 의 반론을 싣는다.
지난 한 세대동안 우리는 인구증가 그 자체가 모든 사회악의 원흉인 것처럼 생각해왔다. 1인당 국민 소득을 경제성장의 기준으로 생각해 왔으니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인구증가를 억제해서 보다는 사람들이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경제발전을 더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인력이 즉 국력인데 인구를 계속 줄여나가야만 되겠다고 하는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필자는 항상 생각해왔다.
지구촌이 만원버스처럼 되어간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바로 이웃나라인 중국이 11억을 가지고있으니, 만일 그들이 동해안으로 몰려 한꺼번에 해수욕을 한다면 우리나라 서해안에 해일이 일어날것이라는 농담을 할 정도인데, 그것이 의미하는것이 무엇인지를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선진국들이 후발개도국을 향해 쓰는 인구억제정책은 그들나름대로의 설득력은 가진다.
그러나 그런 논리가 한반도와 같은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국가에도 똑같이 타당성을 지닌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인구문제는 단순히 먹여살려야하는 입의 숫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인력의 질에 관한 문제라 생각된다. 생산 능력이 있고 동기유발이 잘 된 인구는 발전의 원동력이지만, 그렇지 않은 인구는 사회적인부담이 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잘못 사용한 피임약의 결과로 탄생된 불구 또는 저능아 문제는 사회적 비용이요, 자연법칙에 어굿난 사회적 범죄다. 1인당 부가가치의 생산이 높은 일본이나 스위스같은 선진국에서는 인구의절대 수가 적어도 관계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것도 재고해야할 단계에 오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노동문제전문가들이 노동력의 노후화현상과 이로인해 예상되는 사회적 문제를 걱정하기 시작하는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것이다.
유럽 선진국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흔히 느꼈을 것이다. 전원 같은 평화로운 생활을 즐기고있는 백발노인들만 보면서 그들의 미래를 짊어져줄 새싹이 보이지 않는데서 오는 허무감…. 이것은 결코 감상적인 시의 한구절이 아니다. 외국인노동자를 수입해쓰면서 그들이 과연 얼마나 더 행복했던가를 더듬어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한때 경제학자들은 『한나라의 고용기회는 한정되어있는데, 인구만 많으면 실업자가 쌓일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1920년대에 통용되던「Lump of Labor」라는 오류였음이 판명되었고, 더 많은 인구는 더많은 소비를 조장해서 새로운 고용기회창출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뿐만 아니라 피라미드 구조이던 인구가 역피라미드화해갈 때 젊은 세대가 부담해야하는 불공평한 사회보장부담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도 우리 인간들은 묘책을 강구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아이로니컬한 것은 열심히 가족계획 사업을 추진하는 어떤 지도자가 일곱자녀를 가졌다는 사실이었고 그에게 그것을 지적했더니 그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내가 많이 가져보니까 그러지 말아야겠다는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뜁니다』 라고.
인구증가는 또 환경오염의 원흉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있는 것 같다. 그러나 환경을 파괴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요, 환경을 더욱 더 아름답고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 수 었는 것도 또한 사람이다. 미개한 사람은 아름다운 절벽에 자기 이름 석자를 새겨놓으면서 부끄러줄을 모른다.
그러나 사려깊은 선진사회 사람이라면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서 휴지와 오물을 주워서 갖고나오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묘지까지도 사양하고 자기 시신을 재로 만들어 뿌리거나 의학 발전을 위한 실험에 써 달라고 하면서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겸손한 사람을 생각하면, 문제는 어떤 사람으로 기르느냐하는 것이 중요하지, 사람이 많다고 해서만 문제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믿는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는 매우 잘 다듬어진 표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짜리가 과연 갈 길러질까 하는데 대한 의구의 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하나 자식 황태자 괴벽」이라는 표현이 나올만큼 되었으니 인간형성과정에 있어서 각별한 주의를 하지않는 한 하나만 낳아 잘 기른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결국 인구의 질이 문제이지 양의 문제는 아니다. 남과 더불어 살줄 알고, 환경을 더럽히지 않고, 빌려쓸줄 아는 겸허한 인간으로 교육시키면 되는 것이다. 김수곤 <경희대교수·노동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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