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했는데 영장에 날인이 없다?…대법 "증거능력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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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며 압수품을 옮기고 있는 모습.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며 압수품을 옮기고 있는 모습.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국내 자동차 관련 업체에서 기술영업이사로 일하던 A(59)씨는 2014년 중국의 동종업체 B사로 이직했다. 그런데 2년 뒤 A씨는 영업비밀누설ㆍ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 알고 보니 A씨가 국내 회사에 재직 중이던 2013년 사무실에서 중국의 C업체에 회사 자료를 메일로 보내줬던 것이다. B사로 이직한 뒤에도 국내 회사에서 가지고 나온 자료를 여러 차례 중국 업체 관계자들에게 전달한 점이 드러났다.

1ㆍ2심 법원은 A씨에 일부 유죄 판결을 했다. 그런데 재판 중 A씨측이“이 재판 증거들은 증거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A씨 유죄 입증에는 A씨의 외장 하드나 노트북을 압수수색을 해 얻은 증거가 대다수인데, 이 압수수색을 정당하게 하는 영장에 판사의 날인이 없다는 것이다.

판사 날인 없이 집행한 영장…무효일까

압수수색영장은 수사기관이 청구하면 법관이 발부한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이 영장에는 ^대상자의 이름 ^죄명 ^압수물건 ^수색의 장소ㆍ신체ㆍ물건 ^발부연월일 ^유효기간 ^기타 대법원 규칙이 정한 사항이 기재돼 있어야 한다. 또 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서명하고 날인해야 한다. 2015년 3월 발부된 A씨 압수수색영장에는 딱 한 가지, 법관 서명 옆 날인이 빠져있었다. 다만 판사가 수기로 “이 영장은 일출 전 또는 일몰 후에도 집행할 수 있다”고 적어놓은 부분 옆에 날인이 있긴 있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 따르면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재판에서 증거로 쓰일 수 없다. A씨측은 이를 근거로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모두 무효라고 주장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법관 서명 바로 옆에 날인이 누락됐지만 법관의 진정한 의사에 기해 발부된 것이므로 영장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A씨측은 상고했다.

대법, “실질적 권리 침해하지 않아 증거능력 인정“

대법원은 “영장이 법관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발부됐다는 이유만으로 영장이 유효라고 판단한 것은 원심의 잘못”이라고 짚었다.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확보한 증거뿐 아니라 이를 기초로 한 2차적 증거까지 원칙적으로는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같은 영장 규정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는 이유만으로 획일적으로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면서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해 정당한 형벌권이 실현되는 것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달성하려는 중요한 목표이자 이념”이라고 못박았다.

대법원은 “오히려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도모하려는 형사 사법 정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법원은 그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영장 집행 경위 등을 볼 때 수사기관의 위법한 압수수색을 견제하려고 만든 ‘위법수집증거 배제’조항의 목적이 실질적으로 침해되지 않았다고 봤다.

A씨는 노트북과 SD카드를 압수수색하는 현장에 직접 참여해 복제된 파일을 확인했고,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는 수색하지 않는 등 절차 위반의 내용과 정도가 중대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은 “이 사건 증거들이 절차상의 결함은 있지만 이 결함은 A씨의 기본적 인권 보장 등 법익 침해와 관련성이 적다”며 “이 영장에 따라 수집한 증거 및 2차적 증거까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A씨의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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