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에 대한 제재 조치는 이제 시작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 1일 발표한 반도체 산업 부문 수출 규제는 출발점이다. 이어 다음 달 말까지 중요한 세 번의 분기점이 고비다. 이달 21일엔 일본 참의원 선거, 다음 달엔 8ㆍ15 광복절 문재인 대통령 메시지 등 양국의 주요 정치 일정도 변수다.
7월18일 강제징용 제3국 중재위 구성 시한 #8월24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 시한 #8월말 화이트 국가 리스트 배제 여부 결정
분기점① 7월 18일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 관련해 제3국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요구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답변을 내는 시한이다. 한국 정부가 답변을 내놓지 않을 경우 일본 정부는 이때를 2차 보복 카드를 꺼내는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중재위 구성을 요구하는 근거는 1965년 체결한 한ㆍ일 청구권 협정이다. 협정은 청구권 관련 분쟁이 발생할 경우 첫째로 외교 경로로 해결하고(3조1항), 안 되면 양국 간 중재위를 구성하며(3조2항), 한 국가가 거부할 경우 3국을 통한 중재위(3조3항)를 구성하도록 했다.
이에 일본은 지난 1월엔 3조1항에 따른 외교협의 요청(한국 외교부 “면밀히 검토하겠다”며 사실상 거부)→지난 5월엔 3조2항에 따른 양국 중재위 구성(한국 정부 “신중히 검토 중”이라며 사실상 거부)→지난달 19일 3조3항에 따른 제3국 중재위 설치를 요청했다. 답변 시한은 1개월로, 7월 18일이다. 복수의 외교소식통에 의하면 한국은 제3국 중재위 요청을 수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7월 18일은 일본 참의원 선거(21일) 코앞에 둔 시점이다. 아베 정부로선 한국을 압박하면서 보수표를 결집하는 일거양득의 시점이다. 마이니치(每日)신문 등 일본 언론도 7월 18일을 추가 조치의 관문으로 보도해왔다.
분기점② 8월 24일
한ㆍ일간 2~3급 군사기밀을 공유하기 위해 맺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의 연장 시한이다. 한ㆍ일 양국은 국내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 도발 등과 관련한 기밀 공유를 위해 2016년 11월 이 협정을 체결했다. 1년마다 연장하는데 한ㆍ일 중 어느 한 국가가 파기를 원할 경우 만기 90일 전에 통보해야 한다. 그 시점을 역산하면 8월 24일이 연장시한이 된다.
일본이 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꺼낼 경우 제재가 단순히 경제 분야를 넘어 외교안보 전반으로 확산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일본이 비밀을 공유할 수 없는 '안보 우려국'으로 한국을 간주하겠다는 선언이 된다. 가능성은 엄존한다. 일본 측 외교소식통은 10일 “지소미아 역시 고려의 대상”이라고 전했다. 일본 사정에 정통한 한국의 외교 소식통도 “지소미아도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장시한을 앞둔 8월 15일엔 문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 메시지가 있다. 문 대통령의 광복절 메시지를 본 뒤 일본이 관련 조치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지소미아 파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송영길 민주당 의원 등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지소미아 체결 과정에 정통한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10일 통화에서 “지소미아는 대북 정보의 한ㆍ미ㆍ일 공조 체제 중 하나라는 점에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기점③ 8월 31일
일본의 한국 제재 조치가 반도체에서 산업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는 시점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1일 ‘화이트 리스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관련 정령(시행령)을 8월 중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르면 8월 말까지는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예고다. 화이트 국가란 일본이 핵무기ㆍ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한 까다로운 수출 허가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혜택을 받는 국가다. 아시아에선 현재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이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되면 일본 정부는 반도체만 아니라 자동차ㆍ가전ㆍ전자 등 산업 전체 분야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적용할 수 있다.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외교부 1차관은 “일본이 악의적으로 운용할 경우 한국에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게 화이트 국가 제외”라며 “단순한 수출규제를 넘어 한국이 위험한 국가라는 평판을 국제사회에 퍼뜨리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