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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보복 아니면 뭐냐” 일본 기자도 아베 정부 궤변 따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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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 가지 품목 수출 규제를 왜 한국에 대해서만 강화하느냐.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이 끝나는 타이밍에 절차를 시작하면 대항조치(보복조치)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일본 “징용문제와 무관” 얼버무려 #닛케이 “연쇄 보복 승자없다” 비판 #FT “자유무역에 대한 일본 위선”

“대항조치가 아니라지만, 징용 판결처럼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이번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

일본 측 소식통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를 발표한 1일 오전 경제산업성 브리핑장에선 일본 기자들의 불만 섞인 질문이 계속 터져 나왔다. 이번 수출 규제가 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준비해 온 ‘대항조치’임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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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경제산업성 관계자들은 브리핑 모두에 이번 조치의 취지를 설명했다.

“수출관리제도는 국제적인 신뢰관계를 기초로 한다. 현재 한국과의 관계를 보면 지금까지의 우호 관계에 반하는 한국 측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징용 문제)에 관해 G20까지 만족스러운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았다. 관계 부처에서 검토한 결과 양국의 신뢰관계가 현저하게 손상됐다고 판단하여….”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징용 갈등에 따른 양국 신뢰관계 저하를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거론했다. 그러나 정작 질의응답이 시작되자마자 갑자기 “징용 문제에 따른 대항조치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 기자=“징용 문제에 대한 대항조치인가.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일본 기업에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 대항조치를 취하겠다는 것 아니었나.”

▶ 경제산업성 관계자=“수출 관리를 적절하게 한다는 관점에서 운용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대항조치는 절대로 아니다.”

‘징용 문제로 신뢰관계가 악화돼 취한 조치지만, 대항조치는 아니다’는 궤변에 일본 기자들이 발끈했다.

“대항조치가 아니라면 (징용 문제 외에) 신뢰관계가 저하된 다른 원인이라도 있느냐” “대항조치가 아니라면 이번 조치는 (정부 전체가 아닌) 경제산업성이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냐” “진짜 대항조치를 취할 때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이 기자들로부터 쏟아졌다. 하지만 경제산업성은 “왜 G20이 막 끝난 지금 타이밍에 조치를 취했냐고 묻는다면 징용 문제에 관한 제대로 된 답변이 없었다는 것도 (지금 조치를 취하는) 이유 중 하나”라면서도 끝까지 “대항조치는 아니다”고 버텼다. 또 “이번 조치로 한·일 양국 간 대화 재개가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 예단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발언하지 않겠다”며 얼버무렸다.

이날 경제산업성이 내놓은 설명엔 일본 정부의 모순된 태도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는 평가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7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에 징용 문제 해결을 압박하기 위해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카드를 꺼냈지만, ‘자유무역을 훼손한다’는 국제적 비난이 두려워 보복조치임은 부인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취한 사실상의 보복조치를 놓고 일본 내부의 비판도 등장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2일자 1면에 ‘보복의 연쇄엔 승자가 없다’는 해설기사를 실었다. 닛케이는 “일본이 주도해 도출한 G20 정상선언문 속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무역 환경’이란 내용과 이번 조치가 과연 합치하느냐”고 비판했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조치를 “자유무역에 대한 일본의 위선을 드러냈다”고 지적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넷판 기사를 소개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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