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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소재, 군사 전용 주시” 한국 안보우려국 취급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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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일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에 정합적이다(맞다)“며 ’자유무역과 관계없다“고 주장 했다. 아베 총리가 지난달 30일 오사카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일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에 정합적이다(맞다)“며 ’자유무역과 관계없다“고 주장 했다. 아베 총리가 지난달 30일 오사카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에 대해 “국가와 국가 간 신뢰관계 위에서 해왔던 조치를 재검토한 것”이라고 말했다. 2일자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다. 전날 일본 정부의 설명대로 아베 총리도 ‘한국과의 신뢰관계 저하에 따른 수출관리 강화’ 차원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수출 제한 카드 꺼낸 일본의 속내 #스가·고노 “안전보장상 수출 관리” #일본 정부 내 “한국은 가상적국” #한·일 군사정보협정도 폐기 우려

세코 히로시게. [연합뉴스]

세코 히로시게. [연합뉴스]

WTO 위반 논란을 의식한 듯 2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상,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은 일제히 “안전보장상의 수출 관리 차원이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대항조치가 아니다”고 항변했다. 군용품으로 전용될 수 있는 부품에 대한 수출관리는 국가 간 신뢰를 기초로 이뤄지는데, 한국과는 징용 문제 등으로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그 관리체계를 수정하는 것이지 징용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보복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특히 세코 경제산업상은 “각종 조약, 국제무역체제의 틀 속에서 실시하는 조치로 (안보를 위한 수출통제는) WTO의 전제인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21조에서도 인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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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는 그동안 수면 밑에서 일부 제품의 공급 정지와 비자 발급 제한 등을 검토해 왔다”며 “어떤 품목을 대상으로 할지는 극히 일부의 관계자들이 결정했고, 최종안은 지난 5월 거의 확정됐다”고 보도했다. 또 “일본 기업과 국제 제조업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총리관저의 강력한 의향이 작용했다”고 전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관련 물품을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의 피해를 측정하기 위한 조사를 실시 중이라고 한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기업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기엔 일정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요미우리 “일본 조치 이미 5월 확정”

‘통상 전쟁’으로 번진 한·일 갈등의 배경에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불신, 양국 간 안보 유대감 저하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이번 보복 조치로 한국은 무기 전용 가능성이 있는 첨단재료의 수출 허가 신청을 면제해 주는 일본 외환관리법상 ‘화이트 국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국을 믿을 수 없으니 일본의 안보우호국 27개국 명단에서 15년 만에 빼내겠다는 뜻이다.

앞서 1일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한 경제산업성의 브리핑에선 한국을 안보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일본의 속내가 드러났다. 브리핑에 나선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규제 대상인 3개 품목과 관련해 군용 용도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심사 과정에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레지스트·에칭가스 등이 한국에서 최종 수요자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민생용도로 제대로 쓰이는지 ▶다른 용도나 제3자에게 전달되는 것 아닌지를 면밀하게 챙기겠다고 밝혔다. 그간 ‘준(準)동맹’이나 ‘안보 우호국’이었던 한국을 ‘안보 우려국’으로 간주하겠다는 태도가 역력했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위안부와 징용 갈등에 이어 지난해 말 레이더 조준 논란이 터진 이후 총리 관저를 비롯한 일본 정부 일각에선 한국을 ‘안보 우려국’, 또는 북한과 중국과 같은 ‘가상 적국’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으로 안다”며 “이런 흐름이 이번 조치에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안보 문제에서 양국은 계속 멀어져 왔다. 일본은 공해상 등에서 이뤄지는 북한의 불법 환적 작업 단속에 한국이 무성의하다고 비난한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동아시아의 ‘북·중·러 대 미·일’ 구도에서 한국이 오히려 북·중·러 쪽에 가깝다”고 늘 불만이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에서도 한국은 소극적이라고 일본 정부는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2016년 11월 우여곡절 끝에 체결된 양국 간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에 대한 폐기 압박이 커질 수 있다. 1년마다 갱신되는 조약을 어느 한쪽이 파기하기 원한다면 만기 90일 전에 통보해야 하는데 그 기한이 올 8월이다. 도쿄의 소식통은 “양국 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소미아의 존속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같이 피해보는 미·중과 공조 검토”

정부는 해법을 쉽게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외교부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한국 측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았다. 한·일 간엔 외교적 협의를 위한 접촉 일정도 잡히지 않고 있다.  김인철 대변인은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달 19일 정부가 제안했던 ‘한·일 양국 기업의 기금 조성을 통한 위자료 부담’ 방안을 수용하라고 일본 측에 촉구했다. 이는 제안 당시 일본 정부가 곧바로 거부했던 방안이다.

이런 가운데 외교부는 대응책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이번 일본의 조치로 영향을 받게 될 여타 국가들과의 공조 등 두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자유한국당)이 전했다. 여타 국가에 대해선 윤 위원장은 “한국의 생산 차질로 결국 영향을 받게 될 미국·중국도 포함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서울=이유정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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