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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이틀째 침묵, 청와대 “무대응이지 무대책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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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남·북·미 정상 회동에 대해 ’북·미간 적대관계 종식과 새로운 평화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밝혔지만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남·북·미 정상 회동에 대해 ’북·미간 적대관계 종식과 새로운 평화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밝혔지만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굉장히 조심스럽다.”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일본 정부가 전날 발동한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발언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청와대 관계자가 내보인 곤혹스러움이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맞선 일본 정부의 ‘사실상 보복 조치’였는데도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했다. 관련 질문이 계속되자 “앞으로 수입선 다변화, 국내 생산설비 확충, 국산화 등이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한국, 대응 창구 산업부로 일원화 #보복 맞대응은 않겠다는 전략 #아베 정부 총선 앞두고 강경카드 #“기업이 부담 떠안게 됐다” 비판

실제 청와대는 일본의 보복조치에 대한 대응 창구를 산업통상자원부로 넘겼다. 1일 오전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재로 진행한 긴급 대책회의 결과, 성윤모 산업부 장관을 통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등 대응조치를 취한다”고 밝힌 게 거의 전부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틀째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도 모두발언 전체를 지난달 30일 북·미 회담에 할애했다. 일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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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제안으로 성사된 북·미 회담을 거론하며 “파격적 제안과 과감한 호응은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라며 “이러한 상상력은 정치·외교에도 못지 않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일본 문제에 대한 직접 언급을 피했지만 ‘상상력’ 관련 대목을 직접 써넣으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청와대는 일본 정부의 강경한 대응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총선 전략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6년 임기의 참의원 중 절반을 교체하는 21일 선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참의원 선거 때문으로 보고 있다”며 “일단 WTO 제소 준비를 하면서 일본의 추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지난달 28~29일 오사카(大阪)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는 “일정이 꽉 찼다”며 문 대통령과 8초간 악수하곤 헤어진 것도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그러나 “청와대가 참의원 선거 탓을 한 채 무대응해 기업들이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업들로선 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제재를 가했을 때도 “기업들이 알아서 할 문제”란 청와대의 대처 때문에 노심초사했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외적으로는 무대응에 가깝지만, 이를 무대책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이 정확히 어떻게 경제 보복을 할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즉각 반응했다가 경제 보복 수준이 올라가든 내려가든지 하는 과정으로 끌려간다면 결국 한국이 향후 협상에서 밀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도 “WTO 제소 준비를 하며 정확한 상황 파악을 보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말 외에 당장 어떤 조치가 준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내심 일본과 제재 경쟁을 했다가는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더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한다. 청와대 정책실의 한 인사는 “자유무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국의 경제 구조상 경제 보복으로 맞대응할 수는 없다”며 “특히 일본에 맞서 경제 조치를 취할 경우 추후 미국, 중국 등이 경제 정책과 관련해 정부에 별건으로 압박할 경우 이에 맞설 논리도 없어져 버린다”고 전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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