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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치적 노린 트럼프, 美직거래 원한 김정은…文은 조연 자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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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담이 진행된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 2층 회담장에는 성조기와 인공기만 설치돼 있었다. 태극기는 배치돼 있지 않았다.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으로 다가오자 두 정상을 기다리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악수했다. 취재진과 경호원에 둘러싸인 세 정상은 약 3분간 ‘스탠딩 환담’을 이어갔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 쪽으로 몸을 틀어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이어 북·미 정상이 문 대통령의 안내로 회담장이 마련된 자유의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회담장엔 문 대통령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회담은 그래서 북·미 정상의 만남으로 진행됐다.

회담장에 성조기·인공기만 설치 #“북한, 미국과 직거래 강력 주장” #남·북·미 정상회담은 불발된 듯

남·북·미 정상 긴박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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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오늘의 중심은 북·미 간의 대화”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상봉, 그리고 대화 그것이 앞으로 계속될 북·미 대화로 이어져 나가는 과정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북·미 대화에 집중하도록 하고 남북 대화는 다음에 다시 도모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문점 회담에서 자신은 빠지겠다는 예고였다. 정부 당국자는 “문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이 비공개로 만나는 동안 별도의 장소에 있었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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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자는 “30일 판문점 회담은 미국과 북한 정상이 만나 서로의 입장을 타진하고 교착 국면을 탈피하기 위한 돌파구를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며 “문 대통령의 역할은 두 사람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것까지였다”고 말했다. 또 이날 귀환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상 시간이 많지 않아 북·미 정상의 의견 교환에 집중토록 하기 위해 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배려한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내년 재선에 도전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을 본인의 치적으로 삼고 있고, 북한과 직거래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이 줄어들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오산 주한 미군기지에서 연설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오산 주한 미군기지에서 연설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북한 측이 이번엔 미국과의 직거래를 강력하게 원했다고 한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회담 참석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는 얘기다. 회담에 정통한 소식통은 “29일 오후 북·미가 판문점 회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뒤 양측이 의전과 경호, 의제 등을 협의했다”며 “그런데 문 대통령의 회담 참석 문제를 놓고 북한과 마지막까지 줄다리기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소식통은 “북한 측은 이번 자리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대면하는 자리로 부각하기를 원했다”며 “북측 입장에선 김 위원장의 권위를 국내외에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북·미 회담 형식 요구에는 그간 한국 정부를 상대로 토해냈던 불만도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4월 12일 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비판한 이후 북한은 한국을 배제하는 분위기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지난 26일 담화에서 “한국은 빠지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30일 전격적으로 북·미 회담이 성사됐지만 향후 한국의 역할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회담이 향후 북한의 ‘한국 배제’로 이어져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정용수·이근평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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