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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다루는, 나무 고르는 남자의 토크…“목공은 진짜 사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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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호 02면

내촌목공소 목수 이정섭 vs 목재상 김민식 

내촌목공소의 이정섭 목수(왼쪽)와 김민식 고문. 두 사람은 2006년부터 좋은 목재를 사용해 아름답고 건강한 가구·집 만들기를 함께하고 있다. 오른쪽 작은 소반들은 이 목수가 만들었다. 사용한 나무가 각각 달라 색도 결도 다르다. [신인섭 기자]

내촌목공소의 이정섭 목수(왼쪽)와 김민식 고문. 두 사람은 2006년부터 좋은 목재를 사용해 아름답고 건강한 가구·집 만들기를 함께하고 있다. 오른쪽 작은 소반들은 이 목수가 만들었다. 사용한 나무가 각각 달라 색도 결도 다르다. [신인섭 기자]

강원도 홍천에 있는 내촌목공소의 목수 이정섭(48)씨와 목재 상담 고문 김민식(63)씨는 나무라는 인연으로 얽힌 사이다.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 목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이렇게 힘 있는 가구를 본 적이 없다”고 칭찬할 만큼 뛰어난 아티스트다. 40년간 목재무역 사업을 해온 김 고문은 전 세계의 나무를 찾아 지구 100바퀴, 약 400만km를 돌았다. 한마디로 이 목수는 나무를 다루는 남자, 김 고문은 나무를 고르는 남자다.

안도 타다오가 감탄한 이 목수 #좋은 재료 알아보는 눈 타고나 #김 고문은 나무 찾아 지구 100바퀴 #몸 움직여 나무 배울 땐 낭만적 #알수록 역사·철학 관심 갖게 돼 #취미 넘어 지적으로 풍성해져

돈과 시간의 여유가 생긴 중년 남자들의 가장 큰 로망이 ‘목공’이라는 지금, 나무로 뭔가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내촌목공소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주로 김 고문과의 이야기로 진행됐다. 말수가 적고 낯가림이 심한 이 목수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의견을 대신했다.

둘의 인연은 2006년 시작됐다. 2003년부터 홍천 산골 목공소에 틀어박혀 지내던 이 목수를 우연히 알고 찾아간 김 고문은 그의 솜씨와 생각에 홀딱 반해 목공소 옆에 집을 짓고 이사까지 했다. 김 고문은 이 목수와의 첫 만남을 “산속에 있는 젊은 친구가 어떻게 최고급 악기에나 사용하는 나무로 가구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신기했다”며 “알고 보니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눈을 타고 났더라”고 기억했다.

잘 가꾼 가로수는 거리 이미지를 바꾸고 경제 효과까지 창출한다. 파리의 가로수인 오동나무는 봄에 보라색 꽃을 피운다. [사진 브.레드 출판사]

잘 가꾼 가로수는 거리 이미지를 바꾸고 경제 효과까지 창출한다. 파리의 가로수인 오동나무는 봄에 보라색 꽃을 피운다. [사진 브.레드 출판사]

내촌목공소에는 두 사람의 품격 있는 솜씨를 알아본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기업 총수들은 직접 들러 가구를 구매하고, 직원들을 위한 1일 클래스를 부탁한다. 정치인들이 찾아와 지역구에 목공클래스를 열자고 제안할 때도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목공에 대한 인기가 이렇게 높아진 이유에 대해 ‘워라밸’ ‘소확행’ ‘수공예의 가치’ ‘세상에 하나뿐인 희소성’ 등 분석도 다양하지만, 김 고문의 대답을 들으니 무릎이 탁 쳐졌다. “배울 학(學)자는 사내아이가 지붕을 놓는다(잇는다)는 뜻이죠. 몸을 직접 움직여 뭔가 배우고 싶은데, 그 대상이 나무라니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거죠.”

김 고문은 나무라는 물성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자재(콘크리트·유리·플라스틱·철)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반면 나무는 자연에서 얻죠. 옷도 폴리에스테르보다 천연 소재인 실크가 더 비싸요. 영국을 방문했을 때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받는 최고의 대접은 롤스로이스 자동차가 아니라 나무로 만든 여왕의 마차를 타는 거죠.”

김민식 고문의 집. 집 자체도, 실내를 채운 가구도 모두 이정섭 목수의 솜씨다. [사진 브.레드 출판사]

김민식 고문의 집. 집 자체도, 실내를 채운 가구도 모두 이정섭 목수의 솜씨다. [사진 브.레드 출판사]

김 고문이 최근에 낸 자전 에세이 『나무의 시간』(브.레드 출판사)에는 이런 글도 있다. “영어로 목수는 조이너(joiner)다. 조이너란 서로 다른 것을 붙이는 ‘사람’ 또는 ‘무엇’을 말한다. 못이 없던 시절에 집을 짓고, 가구를 맞추고, 배를 만드는 공정은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일이었다. 짜맞춤, 결구, 연결하는 사람이 조이너다.” 나무라는 취향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말로 읽혔다.

김 고문은 익숙한 이름이지만 잘 몰랐던 나무 이야기를 책에서 잔뜩 풀어냈다. 핀란드의 저렴한 자작나무 합판이 세계 디자인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사연, 유명한 기타 브랜드 깁슨사가 목재 스캔들에 휘말렸던 사건, 시집가는 딸을 위해 오동나무를 심었던 전통, 상수리나무·신갈나무·떡갈나무·졸참나무·너도밤나무·밤나무·가시나무가 실은 모두 ‘참나무’ 패밀리라는 사실, 프랑스 럭셔리 패션 하우스 에르메스가 배나무·사과나무로 가구를 만들었고,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만나는 사람마다 나무 심기 1000엔 기부를 부탁하며 ‘바다의 숲’ 프로젝트를 벌이는 이유 등등.

또 한편으로는 나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만들어내는 거짓정보, 그리고 그 정보를 이용하는 염치없는 사람들을 향한 따끔한 발언도 쏟아냈다. 자동차 브랜드가 배기량을 속이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우리 주변에서 숨 쉬는 나무의 진실에 대해서는 왜 그리 무신경한지 안타깝다며.

“집을 짓는 데 최고의 목재는 소나무고 그것이 전통이라고 신봉하는 분들이 많죠. ‘소나무를 안 쓰면 조상 볼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할 만큼. 그런데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은 느티나무고, 통영 세병관 기둥은 참나무인데 그 오랜 세월을 버텨왔단 말입니다. 세상에 제일 좋은 나무는 없습니다. 각자의 쓰임새가 있을 뿐이죠.”

자작나무를 곡면 처리해 만든 건축가 알바 알토의 암체어 ‘No.31’.

자작나무를 곡면 처리해 만든 건축가 알바 알토의 암체어 ‘No.31’.

김 고문은 나무에 취미를 붙이면 ‘내 손으로 만든 가구 하나’ 갖는 정도가 아니라, 지적으로 풍성해지는 진짜 사치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나무가 있고, 최고의 산지도 다 달라요. 참나무는 미국 동부, 단풍나무는 캐나다, 너도밤나무는 독일·프랑스에서 수입하죠. 나무마다 색과 결도 달라요. 나무는 살아 있는 박물관입니다. 세상에 나온 지 100년도 안 된 콘크리트·플라스틱에는 없는 역사가 있죠. 내가 진짜 좋아하는 나무를 찾게 되면 그 나무의 시간이 궁금해 역사·철학·예술·문학책을 절로 찾게 됩니다. 세상을 새롭게 보는 방법이죠.”

매년 열리는 독일 목재박람회에 가면 저녁 무렵 바에서 나무 알아맞히기 게임이 열린단다. “몇 백 년 동안 손때 묻어 반질반질해진 테이블을 쓰다듬으며 수염 하얀 남자들이 진지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나무 이야기들을 꺼내놓습니다. 참 멋진 풍경이죠.”

홍천(강원도)=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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