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국 말고 중국편 들라'···시진핑, 文 만나 우회압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일본 오사카 웨스틴 호텔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일본 오사카 웨스틴 호텔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세기의 담판’을 이틀 앞두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향해 이중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27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북한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는 한편 미·중 분쟁 국면에서 중국 편을 들라고 은근히 압박하면서다.

 중국중앙방송(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문 대통령에게 “중ㆍ한 협력은 완전히 서로에게 이득이 되고 윈윈이 돼야 하며 외부의 압력을 받아선 안 된다”며 “한국은 양국 간 관련 문제를 원만히 처리하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 압력’은 한국도 중국도 아닌 제3자를 뜻하는 표현으로, 미국을 의미한다는 데 외교 전문가들의 해석이 일치한다. 또 시 주석이 거론한 ‘양국 간 관련 문제’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을 말한 것으로 각각 풀이된다. CC-TV의 이같은 보도는 청와대가 전한 한ㆍ중 정상회담 브리핑 내용에는 없던 표현이다. CC-TV는 한·중 정상회담이 끝난 지 1시간 40분 만에 이같이 보도했다.

시 주석의 ‘외부 압력’ 발언 의도를 놓곤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두고 한국을 중국 편으로 끌어 당기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게 베이징과 서울 외교가의 일치된 해석이다. 미국이 뭐라고 하든 한국은 자기 판단에 따라 중국 제품을 쓸 때 한·중이 윈윈할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렸다.

 ‘양국 간 관련 문제’도 중국이 한국에 ‘사드 철회’를 요구할 때 늘 쓰는 표현이다. 한번 정한 입장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 시 주석의 고집스러운 일면이 읽히는 대목이다. 다만 "양국 간 관련 문제"라는 표현은 지난해보다 한층 완화된 어조다. 지난해 11월엔 사드를 가리켜 "민감한 문제"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7일 일본 오사카 웨스틴 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7일 일본 오사카 웨스틴 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시 주석은 동시에 지난 20~21일 북ㆍ중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북핵 협상판에서 중국의 역할을 부각했다. 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국은 한국과 협력으로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고,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비핵화 문제에서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선 중국이 북한 설득에 기여하도록 끊임없이 중국을 챙겨야 하는 숙제가 있다. 동시에 미·중 분쟁 국면에서 중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ㆍ미 동맹을 흔들지 않으면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아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도 있어 한국으로선 비핵화와 미·중 갈등 모두에서 중국을 상대해아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미·중 관계가 악화하는 가운데 사드 이슈를 한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 남겨두려는 중국의 전략이 보인다"며 "큰 틀에서 보자면 미·중 사이에서 한국에게 '어느 편을 들지 선택하라'고 압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29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에서도 한국을 상대로 했던 전략을 그대로 구사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북한 비핵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업적을 만들어 줄 중재자가 중국인 만큼 무역 분쟁과 하나의 중국 원칙에서 중국에 양보하라는 식의 협상술이다.

 베이징=유상철·신경진 특파원, 이유정 기자 you.sangchu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