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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빛나는 자리 안 찾아도 빛나는 검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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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기정 사회팀 기자

김기정 사회팀 기자

“우리에게 이런 검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소고기를 대접하고 싶다.”

23일 오전 온라인으로 보도된 ‘섬마을 도둑년 몰려 홧병…검사 뚝심이 누명 벗겼다’ 기사에 대한 몇몇 네티즌의 반응이다. 어떤 검사이길래 이런 평가를 받았을까.

경남 남해에 사는 여성 A씨는 절도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지만 무고 정황을 안 검찰이 재수사를 통해 A씨의 누명을 벗겼다. 이어 A씨의 유죄 전과를 없애주기 위해 담당 검사는 직접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수사기관이 수사를 통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민들은 검찰에 이런 ‘당연한 일’을 해달라고 호소하는 실정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26일 발표한 ‘2019년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검찰은 조사 기관 중 3.5%의 신뢰도를 기록했다. ‘기타’ ‘무응답’ 항목을 제외하곤 뒤에서 세 번째다.

검찰의 신뢰가 왜 이렇게 바닥으로 떨어졌을까. 많은 법조계 인사들은 인사에 목매는 검찰 관행을 우선 순위로 꼽는다. 언론에 이름을 오르내리는 소위 귀족 검사는 법무부와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을 잇는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에 집중돼 있다. 권력과 서울에 가까워서다. 인사권자에게 잘 보이려는 검사가 늘어날수록 검찰이 외풍에 흔들릴 가능성도 커진다.

당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되자마자 법조타운이 들어선 서울 서초동 바닥이 인사 관련 소식으로 들썩거린다. 소위 ‘잘 나간다’는 검사에게는 ‘여권·검찰 실세와 인연이 있다’라거나 ‘다음 인사 때 핵심 요직으로 자리를 옮길 것’ 같은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법무부는 이런 관행을 철폐해 ‘귀족 검사’를 없애겠다며 지난해 검사들의 지방 순환 근무 원칙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방에 있어야 할 검사들이 ‘꼼수 파견’ 형태로 여전히 서울서 근무하는 모습이 제법 눈에 띈다.

윤 후보자와 차기 검찰총장을 두고 경합했던 봉욱 대검 차장검사는 27일 퇴임식을 갖는다. 그는 퇴임에 앞서 검찰 내부망에 올린 자필 편지에 초임 검사 시절 자신의 세 가지 다짐을 적었다. 그 중 “빛나는 자리에 가려 하지 말고, 어디든 가는 자리를 빛나게 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대목이 있다.

A씨의 억울함을 풀어준 사람은 창원지검 진주지청의 이희성(36·사법연수원 42기) 검사(판사 전직)다. 관행을 깨고 선배들을 설득해 직접 재심 청구에 나선 사람은 정거장(33·변호사시험 2회) 검사다. 이들은 ‘특수통’ ‘공안통’ 같은 별칭이 없는 일반 ‘형사부 검사’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은 달려야 가는 경남 진주에 근무하고 있다. 이런 평범한 검사들이 제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할 때 자신도, 검찰도 빛날 수 있다.

김기정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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