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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몰카 막으니 찍튀…화장실 가기 겁나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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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권유진 사회팀 기자

권유진 사회팀 기자

하루가 멀다고 어제 본 것 같은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육하원칙 중 시간(언제)과 장소(어디서), 인물(누가)만 바뀔 뿐,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두 비슷한 사건들이다. 여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여자 화장실’과 ‘불법 촬영’이다. 핵심은 여성들이 집 밖을 나서면 화장실조차 마음 놓고 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기시감이 드는 사건들이 반복되는 사이, 여성들에게 공포는 일상이 됐다.

지난해 온라인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는 ‘몰카 금지 응급 키트’가 등장했다. 몰카를 설치한 구멍으로 의심되는 곳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 카메라 렌즈를 부술 수 있는 송곳, 작은 구멍을 막을 수 있는 실리콘, 얼굴 가리기용 마스크 등 자력 구제용품이다. 공공 화장실 불법 촬영 공포에 지친 여성들은 사비를 들여 키트를 구입했다.

그러나 최근 “몰카 금지 키트마저 소용없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불법 촬영범들의 주요 수법이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 화장실에 작은 구멍을 뚫어 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쓰레기 더미에 카메라를 몰래 숨겨놓았던 수법에서 이제는 화장실에 직접 들어와 찍는 수법으로 변했다.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들은 “요즘은 남성이 몰래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휴대전화를 바닥 빈 곳에 밀어 넣어 직접 찍은 뒤 도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안심 화장실’ 또한 안심하고 사용하기 힘들다. 안심 화장실은 지자체가 불법 촬영 기기 설치 여부를 매달 점검하는 공중 화장실이다. 서울시에서 임명된 여성안심보안관들이 주기적으로 화장실을 점검하지만 몰래 들어와 찍고 도망가는 불법 촬영범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많은 여성들이 공포와 함께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불법 촬영 문제에 적극적인 개선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불법 촬영범들의 수법이 변하고 최근의 집계를 통해 기존 대책만으로는 미흡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대응 방법에는 변화가 없다. 이미 화장실 칸막이의 양옆과 앞을 다 막아 빈 공간으로 촬영할 수 없게 하는 ‘안심스크린’ 설치 등의 대안이 있지만 설치된 화장실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일부 지자체와 경찰 등은 공중화장실 칸막이 아랫부분에 안심 스크린을 설치하거나 시공부터 바닥까지 막힌 칸막이를 시공하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유치원생 딸아이가 불법 촬영과 이를 보는 아동 성범죄자들의 표적이 될까봐, 아이가 볼일을 볼 때면 화장실 같은 칸에 들어가 온몸으로 아이를 가린다”는 한 엄마의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했다. 언제까지 소극적인 대책만 내놓을 것인가. 자라날 아이들도 성인들도 모두 불법 촬영의 공포에서 벗어날 날을 기대하고 있다.

권유진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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