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혼내느라 늦었다"→"재벌 좋아한다" 김상조 달라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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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21일 춘추관에서 임명 발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김실장,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21일 춘추관에서 임명 발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김실장,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역대 청와대 실장 중 가장 다변가(多辯家)란 평가를 받는다.

참여연대 시절~공정위원장 초기 #“재벌 개혁 실패 땐 미래 없다” 강성 #작년엔 “개혁 속도·강도 맞추겠다” #기업 현실에 맞는 균형 강조도

새 정부 들어 잇따라 중책을 맡으면서 그의 말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한성대 교수부터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 경제개혁센터 소장(1999~2006년), 경제개혁연대 소장(2006~2017년), 공정거래위원장(2017~2019년 6월)까지 그가 던진 수많은 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는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인 2012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가치 판단의 문제여서 실체를 확정하는 게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현실적으로는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내세운 게 ‘방법론적 최소 원칙’이었다.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부터 천천히 가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거대담론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부족한 것은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능력이다”는 말도 했다. 18대 대선을 한 달쯤 앞두고 여야 대선 후보가 앞다퉈 경제민주화를 소리높여 외치던 때, 그는 “한 해 전까지만 해도 과격한 재벌개혁론자였던 내가 이젠 중간에 불과하다”고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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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공정위원장에 취임한 직후인 2017년 7월 “대기업의 자발적인 변화를 최대한 기다리겠지만, 한국 경제에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며 재벌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2017년 11월 확대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면서 “재벌을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한 발언은 두고두고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4월엔 청와대 국민청원에 답변하며 “이번 정부마저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에 실패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지난해 10월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수의 개인적 이익에 충성하는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하면 안 된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을 직접 겨냥한 그의 강성 발언은 공정위원장을 지낸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삼성의 이익을 훼손하면 매국노라는 인식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삼성 공화국’에서 벗어나기 힘들다.”(2010년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과의 대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판단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2018년 12월, 기자간담회)

“(주주총회 사외이사 추천을 두고) 현대차그룹은 진전된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아쉽다.”(2019년 3월, 동유럽 순방 간담회)

감 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2013년 7월 삼성 사장단회의 강연에서 “삼성을 사랑한다. 다만 사랑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언론 인터뷰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 해체를 결정하는 등 재벌 3세가 윗세대와 다른 인식을 확실히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오락가락 행보는 올해 3월 동유럽 순방에서 “한국 재벌은 관료와 정치인을 포획하고 언론마저 장악했다.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강연 자료를 준비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실제 강연에선 “재벌은 한국의 소중한 경제 자산이다. 나는 재벌을 좋아한다”고 했던 일화다.

그는 지난해부터 “재벌 개혁의 속도와 강도를 맞추겠다. 한쪽 시각에 치우치기보다 현실에 맞게 균형을 잡겠다”고 강조해 왔다. 전임 장하성·김수현 정책실장은 ‘자물쇠’처럼 입을 굳게 닫았다. 달변에, 소통을 즐기다 보니 설화(舌禍)도 잦은 김 실장이 대중과 어떻게 소통하며 청와대 정책실 ‘시즌 3’를 이끌어 나갈지 관심을 끄는 이유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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