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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향한 재계 두 시선 “규제 강화될 것” “현실감각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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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A씨는 최근 사석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털어놨다.

“대기업 고용·투자 압박 커질 우려” #일각 “만나보니 열린 생각 있더라” #경제 반등 막후조정 역할 기대도

A씨는 “기업마다 걸어온 길이 다른데, 대주주 지분을 무조건 편법승계나 ‘일감 몰아주기’의 일환으로 보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장의 룰을 만드는 공정위가 재벌 지배구조 뜯어고치기에만 몰두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가 속한 대기업은 지난해 김 실장이 주도한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크게 늘었다. 대주주 일가의 이익을 늘리거나(사익편취) 편법 승계를 위한 것이 아님에도 계열사의 대주주 지분이 높은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에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다.

청와대가 ‘재벌 저승사자’로 불리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신임 정책실장으로 임명한 것을 두고 재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대기업들은 우선 공정거래법·상법 개정안 등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규제 정책이 계속될 것을 걱정한다. 지난해 입법예고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상장사·비상장사에 상관없이 대주주 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기업과 이들이 50% 이상 지분을 가진 자회사로 규제 대상을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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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 국회 통과가 미뤄지고 있지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가시화하면서 대기업들은 이미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대주주 지분을 줄이고 있다. 대기업들은 관련 사업의 유지·보수나 보안상 이유 등으로 부득이하게 유지하는 계열사까지 규제하는 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예측하기 어렵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 팔목 비틀기’가 강화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10대 기업 고위 관계자는 “순환출자구조가 해소되지 않은 현대차그룹은 칭찬하고, 삼성그룹은 비판하는 걸 보면 어떤 지배구조를 원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며 “대기업에 대한 고용·투자 압박만 심해지지 않을지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공정위원장 후반기 들어 경제민주화법 등에 대해 속도 조절 입장을 밝혔고, 교수 시절과 달리 기업들과 소통하면서 ‘재계의 속살’을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기대해볼 만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기업 경쟁력을 높여 침체된 경제를 반등시킬 ‘막후 조정’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석에서 김 실장을 만나보니 예전보다 재계 목소리에 열린 생각을 가졌단 느낌을 받았는데 김상조만의 색깔을 내며 성공적인 정책을 펼치기를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의 하방 위험 가능성을 인지하면서 그간 재계와 풍부한 ‘스킨십’을 가져온 김 실장을 앞세워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내정 직후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 가능성을 강조한 것도 공정거래위원장 후반기에 내비쳤던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제조업을 주력으로 하는 한 대기업 임원은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이 아니라 일부 개정으로 완화하거나 규제를 풀어주면 기업 입장에선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도 “김 실장을 처음 만났을 땐 원칙론자처럼 보였지만 여러 번 만나보니 재계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도와 현실 감각이 높아졌다고 느꼈다”며 “본인의 원칙을 버리진 않겠지만 기업과 더 소통하고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 현실적인 경제 정책을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동현·오원석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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