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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해에서 알프스까지 페달을 밟다

중앙일보

입력

지로E 출전선수들이 알프스 산악구간에서 오르막 코스를 줄이어 오르고 있다. [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지로E 출전선수들이 알프스 산악구간에서 오르막 코스를 줄이어 오르고 있다. [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로 사이클대회가 3개 있다. 지로 디탈리아(Girod'Italia)는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부엘타 아 에스파냐(Vuelta a España)와 함께 그중 하나다. 2019 지로 디탈리아(줄여서 지로)가 5월 11일~6월 2일 열렸다. 1908년 첫 대회가 열렸으니 올해로 111년째다.

이탈리아 자전거대회 출전기 #루고~토리노, 예술·미식 명소 가득 #밀밭에 만개한 개양귀비 꽃길 장관 #다빈치 600주기 도시마다 기념 행사

지난해부터는 같은 기간, 같은 코스에서 비경쟁 번외 대회인 지로E 대회가 열린다. E는 전기자전거를 뜻한다. 대회를 후원하는 이탈리아관광청은 전 세계에서 참가자를 모아 팀을 꾸렸다. 기자는 5월 21~23일 브라질·독일·오스트리아에서 온 참가자들과 한팀으로 출전했다.

2019 지로E 1~18구간도. [자료 지로E조직위원회]

2019 지로E 1~18구간도. [자료 지로E조직위원회]

지로E는 모두 18개 구간으로 구성되는데, 기자는 8~10구간에 출전했다. 이 가운데 10구간은 산악구간이다. 아드리아 해에서 알프스까지, 이탈리아 반도 북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여정을 만끽했다.

 8구간(루고~모데나, 115㎞)

출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에서 둘째줄 오른쪽이 이탈리아관좡청팀. [사진 지도E조직위원회]

출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에서 둘째줄 오른쪽이 이탈리아관좡청팀. [사진 지도E조직위원회]

이탈리아는 20개 주(regione)로 이뤄졌다.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위치한 루고(Lugo)는 인구 3만 명의 소도시다. 이탈리아 전역이 지로 대회 기간 축제 분위기다. 레이스 통과 지역은 더욱 들뜬다. 전국 일주대회라고는 해도, 모든 도시를 다 들를 순 없다. 출발·도착지는 특별히 선택된다. 지로 기간 전 세계가 이탈리아를 주목한다. 선택받은 도시는 이탈리아가 이 대회를 계기로 세계에 알리고 싶은 도시다.

지로E 8구간에서 레이스를 하고 있는 전 이탈리아 축구대표팀 공격수 루카 토니. [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지로E 8구간에서 레이스를 하고 있는 전 이탈리아 축구대표팀 공격수 루카 토니. [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루고의 출발지점은 1500년대에 세워진 에스테 성 앞. 아침부터 구경 나온 시민이 운집했다. 이날은 특별 참가자가 있었다. 이탈리아가 우승한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아주리군단(이탈리아 축구대표팀) 공격수 루카 토니(42)다. 2026년 겨울 올림픽 유치에 나선 밀라노올림픽유치위원회 홍보대사다. 8구간 도착지인 모데나(Modena)가 그의 고향이다. 출발과 함께 세계적 스타에게 말 한 번 건네보려는 출전자들이 토니 옆에 붙었다. 기자도 빠지지 않았다.

(기자) "루카, 토트넘 손흥민 알아?"
(토니) "손흥민 경기하는 거 봤다."
(기자) "토트넘이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갔는데?"
(토니) "유럽이 아니라 잉글랜드 챔피언스리그지."
(기자) "누가 이길 거 같나."
(토니) "리버풀. 작년에 (준우승해)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클롭 (리버풀 감독)을 좋아한다. 한국 기자랬지. 밀라노를 응원해줘."

코스는 이탈리아의 젖줄 포 강을 따라 롬바르디아 평원을 가로지른다. 고도차가 거의 없어 평탄했다. 이삭 팬 밀밭에는 개양귀비꽃이 함께 만개했다. 평원의 풍경 덕분이었을까. 4시간도 안 돼 까마득했던 115㎞가 요즘 말로 '순삭'(순간삭제, 빨리 사라짐)됐다.

 9구간(파르마~노비리구레, 106㎞)

9구간 출발 전 기념촬영하는 이탈리아관광청팀.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기자다. [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9구간 출발 전 기념촬영하는 이탈리아관광청팀.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기자다. [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1452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19년 별세했다. 올해가 서거 600주기. 이탈리아 전역에서 '혹시 우리 지역은 다빈치와 연관성이 없나' 찾아 나선 분위기다. 파르마 시내 곳곳에도 다빈치 이름이 적힌 그림 포스터가 나붙었다. 그의 회화작품인 '흐트러진 머리의 여자'다. 국립 파르마 미술관이 소장한 딱 하나의 다빈치 작품이다. 파르마는 인구 19만의 작지 않은 도시다. 시내 중심 가리발디 광장을 출발해 5㎞ 정도 도심 구간을 도는 시범 레이스가 먼저 펼쳐졌다. 이어 차량을 이용해 피아첸차 외곽까지 이동했다. 본격적인 레이스다. 풍광은 전날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후반에 서서히 고도가 올라갔다.

지로E 대회 출전선수들이 시내구간을 한데 어울려 달리고 있다. [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지로E 대회 출전선수들이 시내구간을 한데 어울려 달리고 있다. [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도착지 노비리구레(Novi Ligure)는 이탈리아 사이클 영웅 파우스토 코피(1919~60)의 도시다. 별명이 캄피오니시모(Campionissimo), '챔피언 중의 챔피언'이란 뜻이다. 그는 지로에서 다섯 차례 우승하는 등 1940~50년대 세계 사이클계 정상에 군림했다. 노비리구레에는 이 지역 출신인 코피를 기념하는 자전거 박물관이 있다.

 10구간(살루쪼~피네롤로, 112㎞)

지로E 출전선수들이 알프스 산악구간에서 내리막을 달리고 있다.[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지로E 출전선수들이 알프스 산악구간에서 내리막을 달리고 있다.[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전날 9구간 출발지였던 파르마는 스파게티에 뿌려 먹는 파르메산 치즈의 이름이 유래한 도시다. 발효식품 치즈는 서양의 대표적 슬로푸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슬로푸드 운동이 피에몬테 주의 소도시 브라(Bra)에서 시작했다. 10구간 출발지인 살루쪼(Saluzzo)가 바로 옆이다. 눈 덮인 산맥이 이어진 풍광이 사뭇 달랐다. 공기가 차다. 마침내 도로 사이클대회의 꽃, 산악구간의 시작이다.

지로E 코스 길가에서 이탈리아 시민이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지로E 코스 길가에서 이탈리아 시민이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 지로E조직위원회]

팀원인 독일 출신 한스가 뭔가 귀띔해준다. "이틀간 타보니 이 자전거(이탈리아 피나렐로 E-바이크 '나이트로')는 페달링을 65rpm(분당 회전수)으로 할 때 모터 효율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오늘 업힐(오르막)에 참고해." 정상이 해발 613m인 첫 업힐은 가뿐했다. 피네롤로를 돌아 해발 1248m 몬토소 정상에 이르는 업힐이 시작됐다. 모터 출력을 최대로 올리고 페달을 밟았다. 해발 1100m 지점이 한계였다. 나아갈 수도, 포기할 수도, 끌고 갈 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그때 패트롤 오토바이가 다가와 등을 밀어줬다. 길가의 응원 관중이 웅성거린다.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다운힐(내리막)의 시원함에 취해, 어느새 환희에 차올랐다.

사흘간 400㎞ 가까운 레이스를 무사히 끝낸 팀원들과 토리노 인근의 호숫가 중세도시 아비글리아나에서 포도주로 완주를 자축했다.

루고·토리노(이탈리아)=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여행정보

 이번에 자전거로 둘러본 지역은 이탈리아 북부 최대도시 밀라노에서 가깝다. 대한항공이 주 4회 인천~밀라노 직항편을 띄운다. 로마에서 항공편으로 이동할 경우 루고·모데나는 볼로냐공항, 파르마는 파르마공항을, 노비리구레·살루쪼는 토리노공항을 각각 이용한다. 이탈리아는 자전거 천국이다. 도시에는 서울의 ‘따릉이’ 같은 공유 자전거 서비스가 있다. 현지 관광안내소를 통해 자전거 대여 및 투어 예약을 할 수 있다. 이탈리아관광청 홈페이지(enit.it/ko)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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