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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게임중독→공부중독 바꾼 앱, 일론 머스크가 최고상 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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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회사 출신이 만든 공부앱, 세계를 홀리다

이수인 에누마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 순화공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이수인 에누마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 순화공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게임 수난시대다. 게임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공공연히 적대감을 드러낸다. ‘흉악범죄자 집을 압수수색했더니 잔인한 게임이 많았더라’는 식의 수사기관 브리핑은 뉴스거리도 아니다. 게임에 방해된다며 자녀를 학대한 ‘중독자’ 부모 얘기도 잊을 만 하면 나온다. 주요 게임사 대표들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려 나가는 것은 연례행사다. 여기에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질병’이라 공식 결론까지 내렸으니 그야말로 게임은 유해한 것이라는 인식이 대세가 되는 중이다.
 정말 게임은 해롭기만 한 걸까.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에누마는 이 같은 시대적 분위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이들이 모여 만든 에듀테크 스타트업이다. 회사 구성원 중 30% 이상이 엔씨소프트, 넥슨 등 국내 대형 게임사 출신인 이 회사에서 만든 ‘토도수학’은 게임의 원리를 활용한 수학학습 앱으로 유명하다. 2014년 출시 후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건수가 700만건에 이른다. 20여 개국 앱스토어에서 어린이·교육 분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토도수학’을 추천한다는 ‘맘 카페’ 후기가 줄을 잇고 있다. 지금까지 실리콘밸리를 포함해 국내외 벤처캐피털(VC)로부터 총 900만 달러(107억여 원)를 투자받았다. 도대체 이 회사는 게임이라면 질색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인 걸까.

엔씨 출신, 실리콘밸리서 창업 #게임원리 활용한 공부앱 개발 #국내·외 VC, 900만 달러 투자 #개발도상국 문맹 퇴치에 기여

비만 환자 운동, 수포자 공부 게임에 맡겨라

에누마가 2014년 개발한 토도수학. [사진 에누마]

에누마가 2014년 개발한 토도수학. [사진 에누마]

 창업자인 이수인(43) 대표를 만난 지난달 27일은 WHO가 게임이용 장애(Gaming Disorder)에 질병코드를 부여한 날이었다. 그는 약 일주일 한국에 머물다 다시 본사가 있는 미국 버클리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 대표는 “게임이란 인간에게 감동과 이익을 줄 수 있는 장점이 많은 매체인데, 이런 장점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역기능을 불러일으켜 사회적으로 논란이 커지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잘 만들어진 게임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재미와 몰입을 만들어낸다. 해외에선 게임의 장점인 유저몰입기법을 학습·의료·공공 분야에 접목해 활용한다. 이른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ㆍ게임이 아닌 분야 문제 해결에 게임적 사고와 과정을 적용하는 일)이다. 게임은 고래도 춤추게 한달까. 예컨대 비만 환자를 집 밖에 나가게 하고 우울증에 걸린 환자 기분을 좋게 할 때 게임을 활용하는 식이다. 우리 앱도 그 연장 선상에서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2학년만 되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나온다는 것은 학습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이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는 요소를 도입해 연습의 지루함을 견디고 학습을 많이 할 수 있게 해준다면 게임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애니팡, 앵그리버드 하듯 수학 공부 

 실제 에누마의 교육 앱 화면은 애니팡, 앵그리버드 등 모바일 게임을 연상시킨다. 문제를 맞혔을 때 나오는 효과는 마치 캐주얼 게임에서 ‘짜잔’하는 효과가 나오는 것처럼 재밌게 꾸며져 있다. 이 대표는 “어떤 게임은 한 달 만에 질리지만 어떤 게임은 10년 넘게 인기를 끈다. 한국 온라인 게임은 대규모 업데이트를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배경을 보여주고 게임방식을 바꿔 사람들이 지루해하지 않게 붙드는 걸 잘한다. 리니지 등을 사람들이 오래 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는 이 같은 장점을 교육 앱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 남편 이건호(43) 공동대표는 모두 국내 최대 게임사인 엔씨소프트 출신이다.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남편은 리니지2 서버팀장 등 개발 쪽 일을 했고 같은 학교 조소과를 나온 아내는 게임 디자인을 담당했었다. 그러다 2008년에 남편이 UC 버클리 유학을 결정하면서 두 사람 모두 엔씨소프트를 퇴사했다.

 미국에 온 뒤 태어난 첫 아이는 이 대표와 남편이 교육 스타트업을 창업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학습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를 본 의사가 이 대표에게 직업을 물었다. 게임을 만든다고 하자 “환상적이다. 이 아이에겐 그런 재능을 가진 부모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길로 이 대표 부부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몰입해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처음엔 직업이 게임개발자라고 얘기하기 부끄러웠는데 의사가 그렇게 얘기해주니 정말 감동했다. 기존 소프트웨어들을 찾아보니 너무 재미없게 만들었더라. 우리가 만들면 이보다 더 잘 만들 수 있다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앱 개발은 2012년 실리콘밸리 유명 VC인 K9 벤처스 설립자 마누 쿠마르를 만나면서 본격화된다. 시제품을 본 쿠마르가 트위터로 “너희가 있는 데가 창업하기 가장 좋은 실리콘밸리 아니냐. 성공하더라도 여기서 성공해야 크게 성공한다”며 30만 달러(약 3억 5000만원)를 투자했다. 첫 사무실은 UC버클리 인근에 살던 집 1층에 냈다. 2년 뒤 토도수학을 출시했고 소프트뱅크벤처스 코리아, C프로그램, 옐로우독 등 유수의 VC로부터 잇달아 투자를 유치했다.

이수인 에누마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 순화공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이수인 에누마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 순화공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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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재단 주최 경연서 우승 

2017년 탄자니아 욤보 초등학교 학생이 에누마의 킷킷스쿨이 탑재된 태블릿 PC로 공부하고있다.

2017년 탄자니아 욤보 초등학교 학생이 에누마의 킷킷스쿨이 탑재된 태블릿 PC로 공부하고있다.

토도수학으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에누마는 본격적인 도약을 위해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기금을 낸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Global Learning XPRIZE)’에 도전했다. 엑스프라이즈는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잘 풀리지 않은 문제에 대해 거액의 상금을 걸어 해법을 찾도록 하고 혁신을 유도하는 세계 최대 비영리 벤처 재단이다. 이번 문제는 아프리카 등 교사가 부족한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문맹 해결이었다. 2014년 전 세계 스타트업 198개가 참여하면서 시작된 경연을 위해 에누마는 ‘킷킷스쿨’이라는 언어·수학·아동발달·음악·미술 등의 과목이 모두 포함된 종합 학습 앱을 만들었다.

 이 대표는 “초창기 게임은 사용자들에게 불친절하고 어려웠지 않나. 심지어 점프를 못 해서 죽는 게임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나라에 ‘라이트 게이머’ 시대가 왔다. 누구나 간단히 할 수 있는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우리는 킷킷스쿨에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을 적용했다. 사용자 친화적으로 최대한 오래 할 수 있게 어르고 달래고 보상을 줘서 끝까지 공부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문맹 아이들도 '열공'

 에누마는 2014년부터 5년간 진행된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영국 비영리단체 원빌리언과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달 15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구글 플라야비스타 캠퍼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이건호(왼쪽 2번째)에누마 공동대표, 일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대표, 이수인(왼쪽 4번째) 대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에누마]

에누마는 2014년부터 5년간 진행된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영국 비영리단체 원빌리언과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달 15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구글 플라야비스타 캠퍼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이건호(왼쪽 2번째)에누마 공동대표, 일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대표, 이수인(왼쪽 4번째) 대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에누마]

2017년 9월 에누마는 본선 진출 5개 팀에 포함됐다. 본선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170개 마을에 각 스타트업이 개발한 앱을 탑재한 태블릿PC 2700개를 배포하고 15개월 뒤 가장 교육 성과가 좋은 앱을 뽑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에누마는 리니지2 등 압도적인 몰입도를 자랑하는 게임을 개발했던 개발자들이 모인 회사답게 런던에 기반을 둔 비영리단체 원빌리언(Onebillion)과 함께 공동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우승 상금만 500만 달러(약 59억여원). 시상식은 지난달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구글 플라야비스타 캠퍼스에서 열렸다.

“태블릿 PC를 받은 아이들이 충전하려면 매일 마을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충전소까지 가야 했다. 그런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일주일에 12시간 넘게 스스로 스와힐리어를 공부했다. 처음엔 93% 이상의 아이들이 단어 하나도 못 읽었는데 15개월 뒤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상당수 단어를 읽고 쓸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건 정말 게임이 지닌 위대한 힘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 킷킷스쿨은 비정부기구를 통해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등 개발도상국에서 시범 서비스 중이다. 이 대표는 “우리의 목표는 ‘세계 모든 사람이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읽기 쓰기를 하고 셈하기를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며 “누군가 악용하면 돈벌이 수단에 그칠지 모르는 게임이지만, 이를 잘만 활용한다면 인류가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판교=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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