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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 구분 없고 떠들기 장려…벤처 신화들이 꽂힌 ‘거꾸로 캠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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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범수, 김정주가 투자한 판교발(發) 교육혁명

 거꾸로캠퍼스는 교육혁신 비영리단체 ‘미래교실네트워크’가 설립한 일종의 대안학교다. 지난 14일 오후 찾아간 서울 종로구 소재 거꾸로캠퍼스(구 샘터사옥)에는 30여명의 청소년들이 앞으로 두달간 공부할 주제를 찾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박민제 기자

거꾸로캠퍼스는 교육혁신 비영리단체 ‘미래교실네트워크’가 설립한 일종의 대안학교다. 지난 14일 오후 찾아간 서울 종로구 소재 거꾸로캠퍼스(구 샘터사옥)에는 30여명의 청소년들이 앞으로 두달간 공부할 주제를 찾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박민제 기자

까르르 웃음소리가 유리 벽 너머까지 들렸다. 분명 수업시간이라고 했는데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교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마주 보고 앉은 학생들은 여러 과목 교과서와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를 동시다발적으로 들여다보며 수시로 의견을 교환했다. 때로는 과자도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전화도 받고 엎드려 있기도 했지만, 대화는 끊기지 않았고 학생들 눈빛은 재미로 반짝거렸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김범수·김정주·김택진·이해진 등 #5명이 20억 넘게 투자 ‘교육 실험’ #미래에 가장 필요한 건 소통 능력 #중·고생 섞여 공부, 시험도 없어 #“SKY캐슬식 공교육 벗어나야”

교육 실험

교육 실험

 교실인 듯 교실 아닌 곳처럼 보이는 이곳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옛 샘터 사옥)에 있는 '거꾸로캠퍼스'다. 지난 14일 찾은 이곳에선 중학교 2학년 나이인 15세부터 고등학교 3학년 나이인 19세에 해당하는 ‘학교 밖 청소년’ 30여명이 모여 향후 두 달 간 공부할 주제를 정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거꾸로 캠퍼스는 교육혁신 단체인 미래교실네트워크가 C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2017년 3월에 설립한 비인가 실험학교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 이재웅 쏘카 대표 등 판교 테크노밸리를 주름잡는 1세대 벤처기업 창업자 5명이 공동 출자한 C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이곳에 20억원 넘게 투자했다. 서울대·연세대 등 정규 교육과정에서 일류 대학을 졸업한 '수재' 벤처 창업자들이 학력도 인정되지 않는 이 비인가 학교에 꽂힌 이유는 뭘까.

시끄럽게 떠들어야 사는 교실 

 거꾸로캠퍼스는 ‘협력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을 지향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소통하며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 사회에서 가장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정찬필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사회에선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일하는데 교실에선 조용히 앉아서 수업만 듣는 것은 맞지 않다”며 “우리는 시끄러운 교실, 떠드는 교실을 통해 '리얼 월드'에서 필요한 생존 능력을 키우는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교육 방식은 가히 혁명적이다. 교사가 학기별로 정해진 일정에 따라 교과서를 보고 가르치는 수업은 전혀 없다. 대신 모듈(두 달)마다 하나씩 학생들이 함께 공부할 주제를 상의해서 정한다. 주제 선정 방식도 특이하다. 스타트업이 데모데이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사업 제안서를 ‘피칭’하듯이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팀 별로 정한 뒤 이 주제에서 어떤 교과 영역을 학습할 지까지 만들어서 각각 발표를 한다. 발표 후 교사와 학생들이 투표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팀의 아이디어가 그 모듈의 공부주제로 선정된다.

스타트업처럼 학생이 공부주제 정해 '피칭'

주제가 정해지면 주제에서 파생되는 과목별 교과 범위도 함께 정한다. 지난 모듈에선 ‘인간관계 어떻게 맺어야 하는가’가 주제였다. 국어의 경우 사회심리학 책인 『인간, 사회적 동물』을 함께 읽고 토론하고 글을 썼다. 수학은 인간관계에 필요하다며 함수를 공부했고, 과학 교과에선 인간관계를 맺을 때 필요한 휴대전화에 쓰이는 전자기파의 원리에 대해 배웠다. 교과 수업은 오전에 진행된다.

 거꾸로캠퍼스는 교육혁신 비영리단체 ‘미래교실네트워크’가 설립한 일종의 대안학교다. 거꾸로캠퍼스 학생들이 향후 2달간 공부하기 위한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책상에 적어놓은 계획. 박민제 기자

거꾸로캠퍼스는 교육혁신 비영리단체 ‘미래교실네트워크’가 설립한 일종의 대안학교다. 거꾸로캠퍼스 학생들이 향후 2달간 공부하기 위한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책상에 적어놓은 계획. 박민제 기자

 오후에는 해당 주제와 관련된 팀·개인 프로젝트를 위한 시간이 주어진다. 노인의 디지털 소외현상의 원인과 해법,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방안 등 각자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해 연구하는 식이다. 스스로 책과 논문 등 자료를 찾고 전문가도 만나서 모듈 마지막에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e북 형태로 만든다. 제천 매포중학교 국어과 교사로 근무하다 휴직하고 거꾸로캠퍼스에 합류한 이성원 교장은 “교사가 쏟아내듯이 강의하는 것보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게 유도할 때 더 다양한 지식이 쌓인다”며 “이곳을 나갈 때는 무엇을 더 배울지,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주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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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대신 별명부르고, 학년 구분 없이 함께 배워 

학년 구분 없이 다양한 연령대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는 점도 특이하다. 선생님도 이 교실에선 별명으로 불린다. 형·누나 존칭은 없다. 나이에 따른 수직적 위계질서가 배움의 폭을 제한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근무 교사는 8명이다. 이 중 4명은 현직 교사인데 휴직하고 일하고 있고, 다른 4명은 아예 학교를 퇴직하고 이곳에 왔다.

 학생은 총 50여명이다. 최상위권 성적을 냈던 학생부터 1진이었던 학생까지 다양하다. 모두 인근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한다. 그래서 월 수업료는 80만원가량 된다. 아침 식사는 숙소에서 알아서 해결하고 점심은 함께 먹는다. 수업 시간은 9시부터 5시까지로 정해져 있지만, 개인 프로젝트를 위해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

"하고 싶은 공부 하니 술·담배 끊게 돼"

학생들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양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남경(18) 양은 환경보호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게 꿈이다.
“중학교 땐 친구들이랑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일탈을 많이 했어요.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걷어가면 공기계를 대신 내고 수업 시간에 보건실에 가서 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게 일상이었죠. 그런데 여기 오고 나선 친구도 담배도 술도 모두 끊었습니다. 제가 제안한 주제로 같이 공부하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도 생겼고요.”

 거꾸로캠퍼스는 교육혁신 비영리단체 ‘미래교실네트워크’가 설립한 일종의 대안학교다. 지난 14일 오후 찾아간 서울 종로구 소재 거꾸로캠퍼스(구 샘터사옥)에는 30여명의 청소년들이 앞으로 두달간 공부할주제를 찾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자유롭게 공부할 영역을 찾아서 고민해 볼 수 있는 수업시간이 즐겁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수연, 이남경, 강채현 학생. 박민제 기자

거꾸로캠퍼스는 교육혁신 비영리단체 ‘미래교실네트워크’가 설립한 일종의 대안학교다. 지난 14일 오후 찾아간 서울 종로구 소재 거꾸로캠퍼스(구 샘터사옥)에는 30여명의 청소년들이 앞으로 두달간 공부할주제를 찾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자유롭게 공부할 영역을 찾아서 고민해 볼 수 있는 수업시간이 즐겁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수연, 이남경, 강채현 학생. 박민제 기자

화가 지망생이었던 강채현(19)양은 예고에 지원했다 떨어진 뒤, 인문계 학교에 갔다가 적응을 못 한 경우다. 강 양은 요즘 미술품 전시 큐레이터를 꿈꾸고 있다.
“원래 학교 다닐 땐 짜증만 냈어요. 그림 그리고 싶었는데 못하게 했으니까요. 여기 와서 전시 기획하는 일을 배웠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앞으로 전시 작품 기획하는 쪽 일을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예전 친구들이 절 보면 표정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바뀌는 사회에 맞춘 거꾸로캠퍼스 실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설립 후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일부 가시적 성과도 나오고 있다. 미래교실네트워크 연구팀이 측정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다닌 51명이 1학기 보다 2학기에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등 전 측정 영역에서 향상된 결과를 나타냈다. 올 들어선 인천·대구·경기교육청에서 연수를 통해 수업을 참관하는 등 공교육 쪽 주목도도 급상승하고 있다. 중학교에서 전교 최상위권 성적을 올렸던 김세연(16)양은 “예전엔 밥 먹을 때조차 수학 문제를 풀면서 시계를 쳐다보며 10분 안에 먹어야 해 너무 싫었다"며 “이곳에선 시험을 치지 않지만 계속 성장하고 변화하는 게 느껴져서 좋다”고 말했다.

 정 사무총장은 ‘SKY캐슬’로 대변되는 산업화 시대 공교육 모델이 거꾸로캠퍼스와 같은 21세기 기업에 필요한 인재양성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로 가는 기존의 방식은 유효기간이 다 됐다. 상당수 대기업은 학력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 방식을 바꾸고 있다. 수능 성적이 좋다고 회사생활 잘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다. 카카오 같은 IT기업은 개발자 뽑을 때 코딩 테스트를 하고 학력은 보지 않는다. 그래도 최고 수준의 개발자가 모인다. 사회는 이렇게 바뀌는데, 아직 학벌이라는 환상 속에 갇혀있는 이들이 많다. 우리의 실험이 공교육이 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판교=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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