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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T는 ‘돈 풀기’ 아냐…한국, 공공투자 늘려 가계빚 줄여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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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호 04면

‘적극적 재정 확대’ 주장, MMT는 맞나

래리 랜덜 레이

래리 랜덜 레이

“MMT는 포퓰리즘이 아니다.” 래리 랜덜 레이 바드컬리지(미국 뉴욕주) 교수(경제학)의 말이다. 중앙SUNDAY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현대화폐이론(MMT)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면서다. 그는 MMT의 대표 이론가다. 국내에 번역·소개된 『균형재정론은 틀렸다(Modern Monetary Theory)』를 썼다.

이래서 맞다-래리 랜덜 레이 교수 #통화가치, 정부 재정상태에 달려 #‘돈 풀면 물가 뛴다’는 주장 틀려 #균형재정 땐 실직 등 해결 못 해 #일자리 보장제, 물가안정 효과 내

MMT가 한국에선 돈 찍어 나눠주는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경제를 다룬 경제 이론 가운데 그런 이론은 없다. 신자유주의를 ‘국민 90%를 못살게 하기 위한 이론’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도대체 MMT란 무엇인가.
“1971년 달러-금의 태환 중단(닉슨 쇼크) 이후 화폐시스템에 맞는 이론이다. 닉슨 쇼크 이후 세계 화폐시스템은 순전히 종이돈 체제가 됐다. 금화 등 금속화폐를 바탕으로 한 통화이론은 종이돈 시대와는 맞지 않게 됐다.”
좀 더 쉽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기존 화폐이론(금속화폐이론)은 돈이 물물교환의 번거로움 때문에 시장에서 탄생했다고 본다. 반면 우리(MMT 이론가들)는 공권력이 생산물과 서비스를 유통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증서(Charta)가 바로 돈이라고 본다.”

돈은 생산물·서비스 유통 위한 증서

[일러스트=이정권·이은영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이은영 gaga@joongang.co.kr]

추상적인 화폐이론보다 재정이론이 한결 실감나서 일까. 국내에서 MMT는 화폐이론보다 재정정책 이론으로 더 알려져 있다.

돈이 시장에서 태어났든 공권력이 발행한 것이든, 재정정책과 무슨 상관인가.
“현대 통화가치는 정부의 재정상태에 달려 있다. 기존 화폐이론은 ‘재정상태가 나빠지면 돈의 공급이 늘어 물가가 오른다’고 본다. 반면 MMT는 ‘돈의 공급을 늘려도 돈의 수요가 증가하지 않으면 물가는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기준금리 조절과 양적완화 등 통화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냈다고 하는데.
“미국과 유로존, 영국 등이 엄청난 돈을 찍어냈다. 물가는 여전히 디플레이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주요 나라의 실업률도 높다. 적어도 ‘돈의 공급을 늘리면 물가가 오른다’는 기존 논리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재정지출을 무한정 늘릴 수 없지 않나.
“MMT는 ‘재정적자의 지속 가능한 조건’을 제시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중시하는 국내총생산(GDP) 기준 국가 부채비율만이 아니라 정부의 금리 부담, 민간 부문의 재무상태, 재정확대를 통해 이룬 경제성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재정적자 지속 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좀 단순하게 설명하면, 실질 금리가 실질 성장률보다 너무 높으면 재정적자 비율이 늘어나면서 재정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경상수지 적자 등 대외 변수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MMT에서도 경상수지와 환율 등의 변수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난다. 외환시장에서 통화가치가 떨어진다. 달러나 유로화 등 외화표시 국채를 발행하기도 어려워진다. 자연스럽게 재정지출이 제약받는다.”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은 새롭지 않다. 레이 교수는 “MMT는 경기부양이 아니다”고 말했다.

무슨 뜻인가.
“MMT가 추천하는 재정정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자리 보장제(Job Guarantee)’다.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공공 부문 일자리다. 민간 부문의 고용이 경기 침체 등으로 줄어들면 공공 부문 고용이 늘어난다. 반면 민간 부문 고용이 늘면, 공공 부문 고용이 줄어든다. 고용보험 등 그저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일을 시키고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의 마지막 대부자이듯 정부는 일자리의 마지막 공급자다.”

재정 건전성 자랑할 때 가계빚은 늘어

노동시장 공급이 줄어 물가를 부채질하지 않을까.
“오히려 반대다. 호황일 때 정부의 고용이 준다. 정부 지출이 감소한다. 경기부양 효과가 줄면서 물가 압력이 떨어진다. 일자리 보장제가 물가안정 효과를 낸다는 게 MMT의 핵심이다. 또 정치적으로 포퓰리즘 억제 효과도 있다.”
무슨 말인가.
“요즘 포퓰리즘은 정부의 무능 때문에 세를 얻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2009년 유럽 재정위기가 낳은 실직 등 삶의 고통을 중도·좌·우파 정부가 해결하지 못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정책교리인 균형재정에 집착했다.”
한국에서도 MMT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한국은 산업화한 나라들 가운데 국가부채 비율이 낮은 나라다. 그 부작용이 바로 가계부채 증가다. MMT 이론가들은 재정흑자 반대편에 민간 부문, 특히 가계의 적자가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자랑할 때 가계는 빚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제 한국 정부가 공공투자를 늘려 가계부채를 줄여나가야 한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래리 랜덜 레이 포스트 케인스학파이면서 금융버블 이론가인 하이먼 민스키가 교수로 있는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호주 뉴캐슬대학의 윌리엄 미첼 교수 등과 함께 경제학계에서 MMT 논쟁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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