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빚 늘면 어때서? 국내도 논쟁 불붙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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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재정 확대’ 주장, MMT는 맞나

드디어 국내에서도 시작됐다. 재정지출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물꼬를 텄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40% 안팎에서 관리하는 근거가 뭐냐”고 물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40% 안팎에서 관리하겠다”고 보고한 직후다. 대통령의 물음은 경기 부양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 확대를 염두에 두고 한 말로 풀이됐다. 이후 홍 부총리는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2, 3년 후면 국가채무 비율이 40%대 중반이 될 듯하다”라고 말했다. 재정 지출을 늘리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재정적자 커도 경제 성장 가능” #MMT이론가들 ‘균형 재정’ 비판 #“기존 정책으로도 경기 침체 해결” #주류 정책담당자들은 동의 안 해

국가채무비율은 재정 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중앙·지방정부가 갚아야 할 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이다. 추가경정예산을 고려하면 올해 국가채무 비율은 39.5%에 이를 전망이다.

대통령의 문제 제기 이후 부채 비율을 둘러싸고 경제 전문가와 정책 담당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재정 확대 찬성 쪽은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이 통하지 않고 있다”며 “공공 투자를 늘려 성장엔진을 깨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재정 확대 반대쪽은 “통일은 물론 저출산·고령화 등 여건을 고려할 때 향후 재정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채무 비율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국가채무비율 논쟁은 단순한 경기조절 논쟁이 아니다”라며 “통화정책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경제 패러다임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논쟁이란 얘기다. 실제 2008년 이후 제로금리 정책과 양적완화(QE) 등에도 디플레이션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역전쟁과 맞물려 경기 침체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통화정책 중시 시대의 국가가 균형재정 독트린 때문에 경제 양극화와 기술 변화가 낳은 일자리 감소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포퓰리즘을 부채질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최 교수는 “재정 확대 논쟁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통화정책의 한계와 공공투자 확대의 필요성을 놓고 정치권까지 가세해 격돌하고 있다. 다만, 국가채무비율이 아니라 현대화폐이론(MMT·Modern Monetary Theory) 논쟁으로 표출되고 있다. 래리 랜덜 레이 미국 바드칼리지 교수는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MMT는 ‘정부도 적자가 쌓이면 파산한다’는 통념을 비판하는 이론”이라며 “현대 통화와 금융 시스템에서 정부가 일자리 제공 등을 위해 ‘적절한 기간’ 동안 적자를 감수하고 재정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산적인 재정적자는 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린다”며 “국가부채는 미래 세대의 부담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이클 바 전 미국 재무차관보 등은 “MMT는 공짜 점심(퍼주기)”이라고 말했다. 이어 “MMT가 전통적인 경제 이론과 정책의 대안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며 “기존 모델과 정책으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MMT와 관련해 국내에서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이나 준기축통화국인 일본 같은 나라만이 재정적자를 GDP의 60% 또는 100% 이상까지 감당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랜덜 레이 교수는 “MMT는 기축통화국 여부가 아니라 산업 포트폴리오와 자국 통화를 바탕으로 한 채권시장 규모, 금리 수준 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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