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야심작 '노동국'…文이 놓친 '이남자' 잡는다

중앙일보

입력

이재명 경기지사가 16일 오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이재명 경기지사가 16일 오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기도에 노동국을 만들었다. 경기도는 29일 노동국과 공정국, 보건건강국 등을 신설하는 내용의 ‘경기도 행정기구 및 정원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노동국은 노동정책과·노동권익과·외국인정책과로 구성되는데, 전국 광역단체 중에 노동 이슈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 단위 조직을 별도로 둔 건 경기도가 처음이다.

앞서 이 지사는 22일 민노총 경기본부장을 만나 ‘노정(勞政) 교섭’이란 걸 하고, 경기도 관급공사 건설노동자의 주휴수당 보장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는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시대적 과제다.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경기도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날은 이 지사를 수사했던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법원의 판단에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가 있다. 법원의 모든 무죄선고 부분에 대해 항소하겠다”며 항소장을 제출한 날이기도 하다.

안팎의 주목을 덜 받았지만, 이달 9일 이 지사는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9 Play X4’라는 행사에도 참여했다. 일반인에게는 이름부터 낯설지만, 수도권 최대 규모의 종합 게임 쇼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4로 유명한 소니 인터랙티브 코리아(SIEK)의 안도 테츠야 대표 등이 참여한 개막식에서 이 지사는 “게임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가장 중요한 콘텐츠 산업 중에 하나다. 이전 정부에서 각종 규제의 대상이 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경기도는 도움이 될 수 있는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임산업에 대해 쓴 글.

이재명 경기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임산업에 대해 쓴 글.

이 지사의 이 발언은 역설적이게도 세계보건기구(WHO)가 28일(현지시각) 게임 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최종 의결하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WHO의 결정에 찬성하는 보건복지부와 반대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충돌하는 등 정부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 지사의 게임 산업 지원 발언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뒤늦게 회자한 것이다.

노동국 신설과 게임 산업 지원 발언에는 공통점이 있다. 타깃이 각각 ‘노조’와 ‘20대 남성’으로 뚜렷하단 점이다. 두 집단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거나 심정적으로 가깝지만, 점차 거리를 두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무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여권과 파열음을 냈고, 최근에도 각종 파업을 주도하며 거리가 벌어지고 있다. 젠더(gender, 성) 이슈와 엮여 이탈하고 있는 20대 남성의 지지율은 ‘이남자’란 별칭으로 따로 분석되기도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큰길을 가겠다”는 이 지사에게는 지지세를 키울 공간이 마련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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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 지사는 두 집단의 지지를 발판으로 정치적 덩치를 키운 경험이 있다. 정치 입문 초기엔 스스로 ‘소년공’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스토리를 만들었다. 청년층을 대상으로는 성남시장 재직 때 박근혜 정부와 대척점에 서가며 청년 배당을 밀어붙였다. 탄핵 국면 때도 ‘사이다 발언’으로 젊은 층의 호감을 사며 입지를 다졌다.

이런 행보에 대해 민주당의 평가는 엇갈린다. 범친문으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은 “1심 판결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차기’로서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성공한 지사가 되려면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 지사와 가까운 한 의원은 “도정이 최우선이란 생각에서 바뀐 건 없다. 다만 불필요한 의혹에서 자유로워진 만큼 자신감이 더 생긴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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