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화성 검찰 vs 금성 경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사회에디터

강주안 사회에디터

검·경 사이에 수사권 전쟁이 나면 시민들은 무력감에 빠진다. 잠시 잊고 지내던 사실, 우리가 얼마나 살벌한 수사기관들의 치하에 사는지를 상기하게 된다.

모두를 불안케 하는 검·경 폭로전 #‘지휘’ ‘종결’ 두고 서로 딴소리 #정작 영향 받는 시민 목소리 실종

검찰 주장을 따라가 보면 경찰 수사는 섬뜩하다. 한 전직 검찰 간부는 지인이 경찰 수사과정에서 요구받았다는 ‘금융거래정보제공 동의서’를 보여줬다. 지난 5년 이상의 모든 금융 계좌 거래내역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는 “경찰이 광범위하게 계좌를 뒤지겠다며 본인 동의를 요구하면 피의자가 감히 거절할 수 있겠느냐”며 “전국 각지에서 경찰이 검찰의 통제 없이 수사에 나선다면 자영업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시달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전직 경찰서장은, 경찰이 실적 경쟁 때문에 아파트 앞에서 지로 용지를 주운 폐지 수거 할머니를 절도 사건으로 입건한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공포스럽긴 검찰 수사도 마찬가지다. 피의자를 고문하다 죽게 하거나 용의자를 검찰청사로 불러내 성적으로 유린한 몇 년 전 사건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지난 정부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정권 교체 후 해외에 나가려다 붙잡혀 구속되는 현실은 그가 받는 혐의 내용만큼이나 민망하다. 권력자의 뜻에 따라 검찰 수사 결과가 정반대로 뒤집히는 일은 흔하다. 검찰 조사를 받아본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사가 프레임을 짜놓고 진술을 계속 요구하는데 기가 막히더라”며 “검사 선배인 내게도 이러는데 일반 시민에게는 오죽하겠나 싶더라”고 했다.

서소문 포럼 5/21

서소문 포럼 5/21

이쯤에서 시민에게 묻고 싶다. 경찰 수사를 받겠는가, 검찰 수사를 받겠는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타고 신설된다는 새 수사기관에 솔깃하지만 자격 미달이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판·검사나 고위 공무원쯤 돼야 공수처와 마주할 수 있다. 평범한 시민은 검찰과 경찰의 격투기를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수사지휘권·종결권 등 쟁점은 많다. 그런데 양쪽 얘기를 듣다 보면 같은 용어에 대한 검·경의 설명이 너무 다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을 보는 듯하다. 숲속에서 벌어진 강간·살인 의혹 사건을 두고 관련자들이 상반된 진술을 하는 이 영화처럼 검·경의 판이한 주장이 당혹스럽다.

대표적인 게 수사지휘다. 검찰이 말하는 ‘지휘’는 ‘감시’에 가깝다. 경찰이 범죄를 몰래 덮거나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는지 지켜보면서 수사가 옳은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통제하는 행위다. 2017년 경찰이 식품의약 관련 뇌물 사건을 수사하면서 세무공무원만 구속하고 돈 받은 경찰은 쏙 빼놓은 걸 검찰이 밝혀내 경찰관을 구속한 사례를 거론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수사를) 당하는 사람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건 경찰의 부당한 수사를 검찰이 감시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문무일 총장 &#34;검찰 직접수사 총량 대폭 축소할 것&#34;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문무일 검찰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검찰 입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9.5.16   superdoo82@yna.co.kr/2019-05-16 10:16:42/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문무일 총장 &#34;검찰 직접수사 총량 대폭 축소할 것&#34;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문무일 검찰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검찰 입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9.5.16 superdoo82@yna.co.kr/2019-05-16 10:16:42/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반면 경찰은 ‘지휘’를 ‘갑질’로 풀이한다. 온갖 허드렛일을 경찰에 떠넘기고 나쁜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지휘’의 칼을 휘두른다는 논리다. 한 현직 총경은 “수사 경찰이라면 검사의 불순한 지휘로 고생한 기억을 다들 갖고 있다”고 말한다. 검사장이 무면허 운전 사건과 관련해 부당한 지시를 하는 바람에 검사장이 바뀔 때까지 경찰에 보완 수사 지휘를 하며 버텼다는 한 부장검사의 고백도 있다. ‘경·검 협력관계 설정’이라는 민갑룡 경찰청장의 구호에는 현재의 검경 관계가 ‘갑과 을’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20일 오전 국회에서 &#39;경찰개혁의 성과와 과제&#39;를 주제로 당정청 협의회가 열려렸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조국 민정수석 오른쪽은 이인영 원내대표. .오종택 기자

20일 오전 국회에서 &#39;경찰개혁의 성과와 과제&#39;를 주제로 당정청 협의회가 열려렸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조국 민정수석 오른쪽은 이인영 원내대표. .오종택 기자

‘수사종결권’도 그렇다. 검찰 손에 있는 이 권한을 경찰에게도 나눠주느냐가 관건이다. 경찰은 ‘종결’이 ‘시민 편의’를 뜻한다고 말한다. 경찰 조사 단계에서 화해로 끝낼 수 있는 사건을 지금처럼 검찰에 보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에게 경찰의 ‘종결’은 ‘비리 은폐’와 동의어다. 악질 범죄를 경찰이 슬쩍 덮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이 핵심 용어를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쓰는 한 타협은 불가하다. 20일 발표한 경찰의 ‘국가수사본부’ 설치도, 앞서 나온 문 총장의 ‘검찰 직접 수사 축소’도 묵직한 내용이지만 두 기관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화성에서 온 듯한 검찰과 금성에서 온 것 같은 경찰의 접점 없는 대립을 밖에서는 ‘밥그릇 싸움’이라고 부른다. 그릇에 담기는 밥은 시민이다. 그만큼 다퉜으면 이제 시민의 목소리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용어부터 알아듣기 쉽게 정리해줘야 한다. 그들에겐 밥으로 보일지 몰라도 지구의 주인은 시민이다.

강주안 사회에디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