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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뒤에도 ‘미세먼지 매우 나쁨’일 다섯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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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중앙일보 사회에디터.

강주안 중앙일보 사회에디터.

“공주님, 마스크를 쓰셔야 합니다!”

기본부터 안 된 미세먼지 연구 #‘허경영 대책’이 박수 받는 현실 #저만치 앞선 중국 따라잡아야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1984년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한 장면이다. 전쟁이 휩쓸고 간 1000년 뒤 지구가 배경이다. 유독가스로 가득 찬 대기 속에서 인류를 구원할 공주 나우시카가 잠시 마스크를 벗자 사람들이 놀라 당장 쓰라고 외친 것이다. 먼 훗날 최악의 지구를 상상한 장면이 오늘 우리 주변에서 그려지고 있다. 정부는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전문가들은 당분간 희망이 없다고 한다. 근거를 들어본다.

#1.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은 최근 미세먼지와 폐렴의 상관관계를 추적했다. 그 결과 중대한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농도의 미세먼지에 노출돼도 18세 이하의 소아·청소년과 65세 이상 고령인구에서 폐렴 발생 위험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왔다. 폐암 환자 약 7만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대기오염이 초기 환자에게 더 위험한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가 확장돼야 하지만 겹겹의 장벽에 좌절한다고 한다.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최창민 교수는 “미세먼지 연구가 시급한데도 관련 당국이 개인정보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자료를 제대로 안 준다”고 말한다. 인적사항을 지운 뒤 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최 교수는 “우리가 빨리 사실을 파악해야 중국이든 어디든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2. 대기오염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2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한국환경기술개발원이 처음 내놓은 건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이다. 먼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먼지를 줄이려는 범정부적 노력이 시작될 줄 알았다. 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가 이어졌지만 23년 동안 나아진 게 없다. 해가 바뀔 때마다 미세먼지의 경제적 손실만 업데이트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도 미세먼지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4조원에 이른다는 현대경제연구원의 발표가 나왔다. 23년 뒤, 2042년에도 미세먼지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 계산하고 있을 것 같다.

서소문 포럼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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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미세먼지가 어디서 얼마나 발생하는지도 정확히 모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중국보다 연구가 한참 뒤진다는 건 정설이다. 요즘 환경부는 미세먼지보다 블랙리스트로 기사가 더 많이 나온다. 김은경 전 장관은 26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4. 지방자치단체는 어떨까.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시하는 미세먼지 해법은 난해하다. 광촉매 페인트를 칠해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플라스마를 쏴서 터널 속 먼지를 줄이겠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해법은 거창하다. 중국 산둥성·광둥성·장쑤성과 미세먼지를 협의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이 박남춘 인천시장과 미세먼지 공동 대처를 선언한 게 작년인데 뭐가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5. 미세먼지 구원투수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등판했다. 까다로운 현안을 경륜 있는 비전문가에게 맡긴 게 처음은 아니다. 원전 갈등 해결사(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로 김지형 전 대법관을 기용했고 대학입시의 답을 찾는 과제는 김영란 전 대법관에게 맡겼다. 원전도, 대학입시도 혼란은 여전하다. 반 전 총장은 26일 시작하는 보아오 포럼에서 중국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만날 기회가 있다고 21일 희망을 내비쳤다. 그러나 같은 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계절에 따라 우리 강토에서 발생한 것(미세먼지)이 중국으로 날아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리 총리가 반 전 총장에게 “한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중국인들이 고통받는다”고 항의할까 봐 걱정스럽다.

이런데도 희망이 있을까. 요즘 젊은층에게 나우시카처럼 떠오른 인물이 허경영씨다. 그의 미세먼지 강의가 유튜브에서 인기다. 그의 대책을 요약하면 ▶약소국과 손잡고 중국을 압박해 공해저감장치를 부착시키는 것 ▶체질을 강화해 미세먼지를 가마니로 먹어도 끄떡없게 하자는 것이다. ‘출산하면 3000만원, 노인에게 월 70만원’ 준다는 그의 공약은 한때 개그 소재였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원에 힘입어 현실이 됐다. 그런 기적을 기다려야 하나. 꽃샘추위가 매일 오라고, 365일 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 지적처럼 미세먼지가 어디서 얼마나 발생하는지, 사람의 건강에는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기본 연구부터 제대로 시작하자.

강주안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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