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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 주도 전형’은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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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중앙일보 사회에디터.

강주안 중앙일보 사회에디터.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말해라, 아부지 뭐 하시노?”

학생 몰려 로또 확률 된 논술 전형으로 1등 당첨금 챙기는 대학 #수시 확대는 공정성 확보가 전제돼야 … 교육 패러다임 바꿀 때

분노한 교사(김광규 분)가 손목시계를 풀고 성적이 나쁜 학생의 뺨을 갈기는 영화 ‘친구’의 명장면은 옛 추억을 소환한다. 요즘 교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선생님은 학생의 휴대전화에 찍혀 SNS 스타가 됐을 거다.

30년 사이 학교가 많이 바뀌었다. 대입 시즌이면 학창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폭력 교사가 줄어든 건 학교가 나아졌다는 증거다. 그런데 학부모 사이에선 의외로 “대학 입시는 우리 때가 나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입시 제도가 30년 전만도 못하다니 웬 말인가. 비난의 중심에는 ‘공정성’이 있다.

학부모 세대의 입시는 요즘 진행 중인 정시 전형에 가까웠다. 전국의 수험생들이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르고 그 점수가 대학 진학을 좌우했다.

이후 대입 전형은 복잡해졌다. 정시에 앞서 대학별로 먼저 학생을 선발하도록 한 수시 전형이 입시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내신과 학교생활을 검토해 선발하는 학생부종합전형과 글쓰기 시험으로 뽑는 논술전형이 대표적이다.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글 잘 쓰는 학생을 선별한다는 원칙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문제는 학생과 학부모가 대학의 판단 기준을 잘 모른다는 데 있다. 학교에서도 담임마다 지원 전략이 다르다. 모호함은 불안을 부르고 불안은 학원을 찾게 한다. 수시로 대학에 가는 신입생이 4분의 3을 넘어서면서 사교육비 부담도 그만큼 커졌다.

JTBC 드라마 ‘SKY 캐슬’에 나오듯 대학별로 맞춤형 수시 전략을 짜주는 코디네이터(코디)가 상한가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코디들은 학교 선생님처럼 애매하게 말하지 않는다. 학생의 내신과 교사 의견을 훑어보고 목표 학과를 찍어준다. 보완할 점도 정해준다. 이 지침에 따르려면 생활기록부 스펙을 만드는 학원, 내신을 올려주는 학원, 면접을 연마하는 학원 등 무한 셔틀에 타야 한다. 한번 정차할 때마다 코디 상담료를 비롯해 수십만원씩 낸다. 학부모 등골이 빨린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논술 역시 학교에서 준비하기 어려운 전형으로 꼽힌다. 글 한 편 잘 쓰면 꿈꾸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희망에 지원자가 몰린다. 살인적 경쟁률에 ‘로또 전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올해 논술 전형에서 인하대 의대는 381대 1을, 아주대 의대는 292대 1을 기록했다. 숫자 세 개를 맞추는 로또 5등 당첨 확률이 45분의 1이니 ‘로또 전형’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정작 이 전형으로 로또 1등 당첨금만큼 챙기는 건 대학들이다. 논술 경쟁률 85대 1을 기록한 서강대와 80대 1의 한양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들이 수험생 1명당 5만원 이상의 전형료를 받아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6개 대학까지 지원이 가능해 원서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렇게 등골이 빠지고 나면 부모의 머릿속엔 그래도 ‘공정은 했던’ 옛 입시가 떠오른다.

얼마 전 KBS에서 수능 출제위원의 감금 생활을 그린 단막극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를 방송했다. 700명 넘는 출제위원·경호원·의료진을 40일 넘게 외부 세계와 차단하는 철저함이 새삼스럽다. 물샐 틈 없는 관리로 수능을 치르고서 정시 선발은 4분의 1도 안 한다. 이에 비해 2300여 고교 13만여 명의 교원이 관여한 생활기록부를 근거로 진행되는 수시 전형의 공정성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굳이 숙명여고 등 여러 학교에서 드러난 내신 비리를 거론하지 않고라도 말이다.

교육의 패러다임을 다시 생각해보자. 당국은 학생이 대입에만 매달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애써왔다. 수시 확대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어떤 제도를 도입하든 ‘기-승-전-대입’으로 귀결됐다. 내신도, 동아리도, 체험학습도 대입 수단이 돼버렸다.

이런 획일화는 대학에 가면 확 달라진다. 학생들은 미래 목표에 맞춰 과목을 골라 듣는다. 학부모가 대학생 자녀를 위해 학원에 가는 일은 없다. 교육기본법 9조 3항이 선언한 창의력은 대학에서 비로소 자발적으로 꿈틀댄다. 더욱이 앞으론 대학 졸업이 공부의 끝이 아니라는 게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진단이다. 그는 “지식근로자는 정기적으로 학교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 주말 세미나에서 온라인훈련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장소를 정하지 않고 수많은 곳에서, 예컨대 전통적인 대학교에서 가정에 이르기까지 성인들을 위한 계속 교육은 실시될 것”(『Next Society』)이라고 내다봤다. 그런 시대다.

배우 김광규는 몇 년 전 tvN 예능 프로에 나와 영화 ‘친구’를 패러디했다.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소믈리에’ ‘펀드 매니저’ ‘M&A’ 라고 답하자 당황해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매일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대학을 마쳐도 공부는 끝이 없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자율적 학습의 실제 출발점은 대학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입시는 공정성에 초점을 둬야 한다. 수시가 아무리 숭고한 교육 철학을 품고 있어도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공교육의 신뢰를 무너뜨리면서 부모의 등골만 휘게 하는 악순환은 피하기 어렵다.

강주안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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