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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국가? 기업과 부자도 품어야 경제가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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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광기
김광기 기자 중앙일보 에디터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3년 차를 맞아 ‘포용’이 국정의 최고 화두로 떠올랐다. ‘포용적 성장’ ‘포용경제’ 등이 나오더니 ‘포용국가’라는 비전이 전면에 등장했다.

구글을 검색해 보니 ‘포용국가’를 표방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학술적으로 활발히 연구되거나 정립된 용어도 아니다. 한국을 최초 사례로 소개한 글들이 눈에 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국민을 차별 없이 품고 가는 건 국가의 기본 소임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그렇듯 대부분 국가의 헌법에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포용적 국가를 의미한다. 어떤 나라가 포용국가임을 내세우는 것은, 어떤 사람이 “나는 사람”이라고 굳이 외치는 것과 비슷하게 들릴 수 있다.

이에 비해 경제의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란 개념은 많이 연구되고 쓰이는 용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의제로 채택하기도 했다. 국민에게 경제활동 참여의 기회를 보다 공평하게 제공할수록 경제가 더 성장하고 소득 불평등도 완화된다는 이론이다.

그 실천 방안으로는 무엇보다 규제개혁 등을 통해 시장에서 공정한 게임이 펼쳐지도록 하라고 제안한다. 누구나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으면 시장에 뛰어들어 ‘창조적 파괴’를 감행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포용적 성장 이론은 또한 젊은이들이 시장 참여 전에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을 개혁하고, 시장에서 패배한 이들의 부활을 돕기 위한 사회안전망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국가의 역할은 제도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포용적 성장은 어떤가. 실행 방안들을 보면 대부분 국가 재정의 역할에 치중해 있다. 사실상 소득재분배를 위한 복지정책에 가깝다. 세금에 의존한 소득주도성장이 강한 비판과 저항에 직면하자 우회 수단으로 포용적 성장론을 띄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포용국가가 되려면 모든 경제주체를 아울러 품고 가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문 정부의 포용은 노동자와 소외계층에 편중된 반쪽짜리로 흐른다. 그 와중에 사회적 약자의 가면을 쓴 기득권자들이 ‘창조적 파괴’를 위한 신산업·신기술 투자를 가로막는다. 공유경제와 영리병원이 대표적이다. 건설현장 등에서 벌어지는 기득권 강성 노조의 일감 가로채기는 수많은 약자들을 울린다.

포용적 성장은 규제개혁에 초점을 맞추면 재정 투입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시장이 살아 움직여 돈 되는 게 보이면 금융시스템이 작동해 민간 자금이 춤을 추게 돼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혁신 노력은 뒤로 한 채 끊임없이 추경 등 예산 타령이다.

그나마 세금이 잘 걷히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일 듯하다. 상장기업 순익이 올 들어 40% 급감하고 수출도 줄고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위축되고 기업 자금은 물론 민간 돈까지 해외로 이탈하고 있다. 기업과 부자들은 과도한 세금과 인건비, 철옹성 규제 때문에 숨이 막힌다고 하소연한다. 그렇게 사업을 하고 세금을 내면서도 적폐세력 취급까지 받는다.

문 정부는 지난 2년간 최선을 다해 촛불 부채를 갚았다. 앞으로 남은 임기는 포용력을 제대로 발휘해 계층과 이념을 초월한 국가 경영을 해주길 바란다. 소수의 극우 보수주의자들 일탈 행동을 가리키며 보수 전체를 비난해선 안 된다.

이제 탈세는 꿈꾸기 힘든 세상이 됐다. 기업과 부자들은 투자하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것만으로도 대접을 받는 사회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반목과 갈등을 넘어 신뢰와 협력, 통합의 정치를 하기에 아직 시간이 있다. 그게 내년 총선에서도 표를 얻는 길이다.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