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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北 "식량 급하다" 하노이 결렬 직후 유엔에 SO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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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마리오 자파코스타 연구원. 중앙일보와 8일 전화 통화에서 "대북 식량 지원이 3주 안엔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FAO 제공]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마리오 자파코스타 연구원. 중앙일보와 8일 전화 통화에서 "대북 식량 지원이 3주 안엔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FAO 제공]

 북한이 지난 2월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SOS를 친 것으로 나타났다. FAO의 마리오 자파코스타 연구원은 8일 밤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3월 초에 ‘급하다(urgent)’며 연락이 와서 북한으로 실사를 들어갔다”며 “비자 발급 등에서 속도감 있게 북한이 진행해 줘서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3월 초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정상회담이 깨진 직후다. 북한이 북ㆍ미 정상회담 이후 교착 상태를 예측한 뒤 미국의 대북 압박에 대비해 국제기구를 상대로 식량 지원을 채근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자파코스타 연구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밤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언급한 FAO의 북한 식량 실태 보고서를 직접 작성했던 전문가다.

북한 실사했던 FAO 연구원 전화 인터뷰 #지난 3월 방북해 6개 도 155개 농가 방문 #한ㆍ미 정상 통화때 나온 보고서 작성자

FAO와 WFP의 연구진이 지난 3월 북한에서 식량 관련 현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WFP&FAO 제공]

FAO와 WFP의 연구진이 지난 3월 북한에서 식량 관련 현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WFP&FAO 제공]

앞서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7일 한ㆍ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서면으로 브리핑하며 “양 정상이 최근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북한 식량 실태 보고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이를 지지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자파코스타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요지.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오후 35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북한이 지난 4일 쏘아올린 발사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이후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해 시의적절하다고 말했다"고 서면 브리핑했다. [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오후 35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북한이 지난 4일 쏘아올린 발사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이후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해 시의적절하다고 말했다"고 서면 브리핑했다. [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북한 실사는 어떻게 성사됐나. FAO가 먼저 연락한 건가. 
"북한이 처음으로 식량 사정이 좋지 않다고 연락을 해온 게 지난해 10월께다. 우리가 ‘직접 실사를 해야 보고서를 쓸 수 있다’고 했더니 방북 초청을 해줬다. 지난 3월엔 더 급하게 연락이 왔다. 빨리 들어와서 실사해달라고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FAO 사무실로 북한 측에서 연락을 해왔고, 비자 발급 등도 속도감 있게 진행해줘서 바로 (북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실사의 범위와 내용은. 
"북한 내 6개의 도(province)를 북한 당국이 제공한 차량으로 돌면서 총 155개 농가를 살펴보고 농민들을 인터뷰했다. 실제로 지난해 작황이 좋지 않았고 실제 배급량도 현저히 떨어졌음을 파악했다."
문 대통령이 FAO의 보고서를 직접 인용했다.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실제로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한국이 식량 지원에 속도감 있게 임했으면 한다. 바라건대 3주 안에는 대북 식량 지원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왜 3주인가. 
"추수기가 오기 전까지 비축해놓은 식량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3~4주 안에는 식량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분석이다." 
대북 식량 지원은 유엔과 미국이 주도해온 대북 경제 제재 조치의 완화 또는 면제를 필요로 하는데. 
“나는 (대북) 제재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정치와 인도적 지원은 분리돼야 하지 않겠나. 임산부와 영유아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다.” 
식량 사정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실제 장마당 등에선 쌀·강냉이(옥수수) 등 식량 가격은 몇 년째 안정세다. 
“솔직히 말해서 장마당은 안타깝게도 둘러보지 못했다. 둘러보겠다고 북한 당국에 요청했고 일단 그들도 오케이는 했으나 직전에 ‘그 장소에서 마라톤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취소가 됐다.”
마리오 자파코스타 연구원이 지난 3월 방북 당시 직접 촬영한 북한 사진. [FAO 제공]

마리오 자파코스타 연구원이 지난 3월 방북 당시 직접 촬영한 북한 사진. [FAO 제공]

자파코스타 연구원은 그러나 “하지만 농가구 농민들을 직접 심층 인터뷰를 했고, 농업 담당 실무 국장 등과도 만나 심층적으로 질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자파코스타 연구원과 FAO 및 WFP 연구진들은 올해 가을에도 방북을 추진 중이다. 그는 “실제 추수기에 현장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작황 등을 점검해야 한다”며 “9~10월께 방북을 다시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과도 협의 중이라는 뉘앙스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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